[발언대]외화유입 촉진위해 성숙한 개방의식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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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파산위기에 처한 국가경제를 되살려야 할 절대절명의 짐을 지게 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의 일성은 '철저한 시장경제 추구와 대담한 개방' 이었다.

외국자본이 이 땅에 투자해야 한국이 회생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IMF협약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뜻 또한 천명했다.

한국경제의 위기극복은 모든 사람이 수긍하고 있듯이 국제사회에서의 신뢰회복을 통한 외국자본의 신속한 유입과 국산품의 경쟁력 향상을 통한 수출증대인데, 문제는 한번 깨진 한국에 대한 신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이 외국, 특히 구제금융을 제공한 여러 선진국에 보여주고 있는 이미지는 매우 '이기적이고 국수적인 나라' 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IMF와 여러 국가 - 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가입국가 - 가 한국에 제공한 것은 분명 '구제' 금융이지 '침략' 금융이 아니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 발표후 불 번지듯 한국내에서 일고 있는 감정적인 외산 배격운동이 지금 같이 외국인 투자에 목말라 하고 수출에 매달려야 하는 때 과연 정당한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현재 한국이 수입하는 것중 대부분은 원자재.자본재이지만 수출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완제품인 소비재다.

그런데 수출을 많이 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우리가 한국의 숨통을 쥔 수출대상국의 심기를 건드릴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과소비는 분명 사라져야 하지만 건전한 소비와 상징적인 선에서 이뤄지고 있는 수입과 시장개방을 극단적으로 몰아내려는 움직임은 외국에서 볼 때 믿을 수 없는 행동의 연장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언론이나 정부는 개방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지만 시장상황은 어느 한 구석도 외국인 투자가들이 마음 놓고 달러를 갖고 들어올 만한 데가 없고, 더구나 투자하고자 해도 한국내 배타적인 국민정서 앞에 아무도 보따리를 풀고 싶어하지 않는다. 경제회생의 열쇠인 외국자본 유입은 결국 외국의 민간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국의 민간투자는, 바깥문은 빗장을 단단히 걸어 놓고 안은 끓는 물처럼 외산품 배격으로 부글거리는 나라엔 결코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가 누구든 한국에 다시 돌아와 달라고 개방의 손을 흔들어도 한국 내부의 폐쇄된 의식, 세계화를 입으로만 외치고 시장에선 국산만 옹호하는 태도가 지속되는 한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의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안타깝지만 관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관적인 전망을 극복하고 새해에 새로운 희망을 갖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열린 사회, 성숙한 개방의식으로 세계와 함께 걷는 나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송덕영<필립모리스 아시아㈜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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