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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시청각실 上.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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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등장인물 혜진, 동석, 희경, 여자, 남자, 라디오DJ, 컴퓨터 (소리) 무대는 두 개의 방과 놀이터 DJ박스가 있다.

두 개의 방은 동석과 혜진의 방이며, 시청각도구 - TV, 비디오, 라디오, 전화기, 컴퓨터로 갖춰져 있다.

방은 갇혀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하며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최소로 제한한다.

방과 방 사이는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도록 무대 양 끝쪽에 놓는다.

놀이터는 무대 전체를 활용한다.

놀이터에는 벤치와 가로등이 있고 따뜻한 인연을 만들어내는 동화속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뒤쪽으로는 마이크와 헤드폰이 있는 투명한 DJ박스가 있다.

(가능하다면 2층의 공간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도 좋다) 1. 음악이 흐르면 핀조명 DJ박스를 비춘다.

DJ:오늘도 습관처럼 라디오를 켜신 여러분들에게 친구가 되어드리는 '라디오 데이트' 시간입니다.

여러분에게 누군가의 방을 몰래 들여다 볼 수 있는 특권을 드리겠습니다.

(음악소리 커졌다 낮아지면) '훔쳐보기' , 그의 일상은 오늘 나의 역사가 되고 있다.

비디오데크에 익숙한 인물들의 이름을 넣고 재생단추를 누른다.

이윽고 테이프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간다.

숨죽일듯한 정적이 흐르고 나는 그와 함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되돌릴 수 있는 버튼은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들과 예측할 수 없는 환희가 있을뿐… 'The Doors' 의 'Hello I Love You' 였습니다.

잠시후 우리들의 은밀한 프라이버시를 공개합니다.

DJ가 멘트를 읽는 동안 동석 방에 들어와 불을 켠다.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한다.

혜진의 방에 전화벨이 울린다.

혜진 허겁지겁 뛰어들어와 수화기를 든다.

혜진 : 여보세요.

동석 : 야, 짱구 일찍 다녀.

혜진 : 원고 마감날이잖아. 칼럼 한꼭지 없어져서 난리 났었어. 작가는 팩스로 보냈다고 하는데 종이에 발이 달렸는지 - 야, 너 또 디스켓 넣지?

동석 : 프로그래밍 작업해야돼.

혜진 : 우리 반지 만들자. 다다음주 토요일이 무슨 날인줄 알아?우리 만난지 5백일, 자그마치 한오백년!

동석 : 애들이냐, 그런걸 하게. 노래방 가서 '오' 자 들어가는 노래나 실컷 부르자. 오동추 타령, 오빠생각, 오 스잔나, 오 - 해피데이. 어때?

혜진 : 반지 싫어?

동석 : 그거 끼면 5분 간격으로 손가락에 쥐가 나. 다른거 줄께.

혜진 : (반가워하며) 뭔데?

동석 : 동사무소 가서 등본 한 통 떼어다 줘.

혜진 : 뭐? 기막혀 -

동석 : 원고마감 끝났으니까 시간 많잖아.

혜진 : -

동석 : 빨리 대답해. OK?

혜진 : -

동석 : 대답 안하면 나 전화 끊는다.

혜진 : -

동석 : (속삭이듯 달래며) 다양한 현장경험이 자유기고가한테 필수 아니냐. 혹시 알어, 거기서 엄청난 기사 하나 주워오게 될지. 잠겨진 상상력이 벌떡 일어나면 넌 특종 하나 건져오는거야. 건지면 다 내덕인줄 알아.

혜진 : 언제까진데?

동석 : 토요일까지.

혜진 : 그 날 저녁 사.

동석 : OK.나중에 보자. 놀이터 가로등이 켜진다.

20대 중반의 여자, 흰 스커트와 재킷을 입고 등장한다.

주위를 살피더니 소형 카세트를 꺼내 벤치에 올려놓는다.

조용한 피아노 연주곡이 흐른다.

여자 : 내가 시키는대로 할 수 없겠니?

(총총걸음으로 물러서며) 네 선생님. (자리로 와서 발레 동작을 한다) 아라베스크, 아라베스크. 에뛰드,에뛰드, 턴. (어설픈 흉내) 다시 한 번만 해보자. (물러서며) 네 선생님. 턴 - (어설픈 흉내, 화가 나서는) 아니야. 이건 아니야. 꽃처럼 나비처럼 움직여 줄 순 없나. 아까는 잘했잖아. 남자, 여자를 주시하며 지나가다 멈춘다.

남자 : 저 - 실례합니다.

여자는 듣지 못하고 '턴' 을 하다 남자와 마주친다.

놀라서 뒤로 물러난다.

남자 : 놀라셨군요. 죄송합니다.

저는 잠깐, 볼일이 - (용기를 내서 인사를 하며) 안녕하세요. 저는 저 아파트 209동 308호에 살고 있는, 물론 혼자 사는 건 아니구요, 아버지 집인데 얹혀 사는거죠. 아, 지금은 상황이 그렇습니다.

올해 회사에 취직했어요. 1년정도 가사일에 동참했었는데 - 직장이 생겼어요. 올 봄에요. 아, 이름은요. 여자는 의아해 하며 남자에게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한다.

남자 : 예?

이제 이름만 말하면 되는데 - 아, 그렇죠. 제가 여기 서있게 된건요, 콩나물국에 밥 두 그릇을 말아먹고 나서 신문을 보다가 창밖을 보니 달이 떴어요. 저 달빛에 밤하늘이 녹아 내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될 만큼 고왔죠. 베란다에 나와서 달구경을 하는데 하얀 옷을 입은 토끼가 움직이고 있더라구요. 춤을 추는 토끼, 춤을 추는 홍당무 - 토끼가 홍당무를 좋아하잖아요. 여자 더욱 더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남자 : 같이 춤을 추고 싶어요. 포크 댄스 출 줄 알아요?

여자 : 몰라요.

남자 : 제가 가르쳐 드릴께요.

여자 : 전 - (망설인다) 남자가 주머니에서 카세트 테이프를 꺼내 여자의 소형 카세트에 넣자 포크 댄스 음악이 흐른다.

남자 : 자, 한곡 부탁합니다.

(포크 댄스 동작으로 인사를 한다)

여자 : 하지만 - 자신 없어요.

남자 : 먼저, 마주보고 서서 인사를 합니다.

박자에 맞춰서 손뼉을 세 번 치고 허리에 손을얹어요. 서로 엇갈리게 어깨를 내밀어요.

여자 : (엉거주춤 따라하다가) 아이, 못하겠어요. 남자 : 용기를 내요. 여기 제가 있잖아요. 남자와 여자는 포크 댄스를 춘다.

희경 놀이터에 등장. 땅따먹기 놀이를 한다.

희경 : 어젯밤엔 통신장애가 생겨서 그애를 만나지 못했어. 벌써 삼개월째 통신에서 그애를 만나고 있어. 아주 부드럽고 달콤해. 솜사탕 같은 사람이야. 사람?

그 앤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일까?

상관없어. 아무려면 어때. 지금 난 사랑을 하고 있잖아…

2.

동석 수화기를 들고 메모리 버튼을 누른다.

혜진의 방 전화벨이 울린다.

그들의 암호 - 한번 울렸다 멈추고 다시 울릴 때 혜진은 수화기를 든다.

동석 : 나다.

혜진 : 어떻게 된거야? 연락 안되서 얼마나 걱정했는줄 알아?

동석 : 바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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