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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한국' 대미통상 세가지 숙제…김석한 재미변호사 특별기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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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말 한국에 대한 자금 조기지원을 성사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김석한 (金碩漢) 변호사가 '국제통화기금 (IMF) 합의사항이 한.미통상에 미치는 영향' 이란 제목으로 기고를 해왔다.

그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 미 정책결정의 '우선순위' 로 떠오른 한.미 통상관계 = 한국의 경제 위기와 이에 따른 IMF와의 합의사항이 한.미통상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한국문제가 미국의 정책 결정에서 '우선 순위' 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과의 통상문제는 미국 고위 정책입안자들의 우선적인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몇주간의 사태는 의사결정 과정을 크게 변화시켰다.

한국문제는 이제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샬렌 바셰프스키 미 무역대표부 (USTR) 대표, 그리고 윌리엄 데일리 상무장관 등 미국 최고위 정책 입안자들에 의해 면밀히 검토되고 분석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최고위 정책 입안자들은 사안에 대해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 아래서 신속히 반응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런 상황아래서는 한국 노동조합의 파업이나 소비절약 운동뿐 아니라 한국 정부의 발표사항, 여러 조처들까지 면밀한 분석과 신속한 논평 대상이 된다.

또 그 과정에서 양국간 긴장은 더욱 고조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IMF와 미국의 지원 조건으로 특정 부문의 한국시장 개방이 보장되길 바라는 미국 기업들이 이미 USTR와 상무부에 접근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 기업들은 우선 IMF의 지원이 재벌을 돕는 데 쓰이지 않을 것이란 점을 확실히 하고 싶어한다.

더욱이 컴퓨터칩.철강.자동차 등과 관련된 기업들은 '한국의 주요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사업확장을 지원하기 위한 대출 금지' 와 같은 구체적 사안들을 주문하고 있다.

재무부는 지금까지는 그와 같은 요구에 대체로 초연해 왔다.

의회 승인을 받지 않고도 재무부가 사용할 수 있는 특별 기금으로 미국이 한국에 50억달러를 지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한국 상황이 악화돼 추가 지원이 필요해진다거나 이 기금 사용에 의회 승인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재무부는 미국의 이익집단의 목소리에 좀 더 귀기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미 의회는 대한 (對韓) 지원에 여전히 회의적이다 = 오는 1월말에 의회가 다시 열리면 한.미관계는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띨 것이다.

지난 가을의 신속처리권 (fast track)에 관한 논쟁에서 드러났듯이 많은 의원들이 자유무역의 수혜에 대해 회의적이다.

상대국 시장이 폐쇄적일 경우엔 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 의원들은 미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50억달러의 대한 지원을 결정한 것에 불쾌감을 표시해 왔다.

따라서 회기가 다시 시작되면 일부 의원들의 특정부문 시장 개방 요구 뿐 아니라 IMF 합의 자체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되는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부 의원들은 특정 산업의 이익을 대변해 적극적으로 활동할 것이다.

실제로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자신의 출신 주에 있는 래리 크레이그 상원의원은 최근 미 행정부가 자금지원의 조건으로 ▶한국정부와 재벌간의 '공생관계' 단절▶IMF구제금융의 재벌지원 불가▶비호혜적 무역관행 철폐 등의 조건을 내걸어야 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의회에 배포하기도 했다.

◇ 미국의 여론도 곱지는 않다 = 한.미 통상관계는 미국 일반국민이 IMF지원과 한국의 경제 개혁 과정을 어떻게 보느냐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미국이 유례없는 저실업과 저인플레하의 성장이라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자유무역은 미국기업의 해외이전과 국내 일자리 감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이 전세계적으로 미국 제품의 5위 수입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미국의 중요한 수출시장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

물론 통신업계처럼 한국에 대한 수출과 관련이 깊은 기업가 집단들은 한국 경제 위기를 방관했을 땐 미국경제와 자신의 사업이 타격받을 것을 알고 있다.

대중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또다른 요인은 미 기업들이 한국 상황을 보는 눈이다.

앞서 말했듯 최근 미 기업들은 지원금이 재벌을 구하는데 사용되지 않을 것인가 우려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한국 정부의 부패와 정경유착에 관한 보도는 한국의 경제위기가 정부의 정책 실패와 민간과 정부간의 음험한 관계에 기인한다는 인식을 지나치리만큼 깊이 심어줬다.

◇ 한국정부의 가시적인 개혁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 한국의 경제 상황이 심각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한국정부는 이 기회를 통해 한국에서 경제 활동의 승자와 패자를 정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는 인식을 미국 대중과 정책입안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

앞으로 수개월동안 한.미 통상관계 개선을 위해선 한국정부가 IMF와 합의한 금융.통화 개혁에 진전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의 금융개혁 관련 법안 통과나 외국인 투자 개방등의 가시적인 조치는 한국정부가 개혁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가 된다.

이런 노력은 미 행정부와 의회에 의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미국 기업들의 비난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김석한 <재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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