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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칼럼]부각안된 올해 성탄절 특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주의 중앙일보는 성탄절인 25일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가 장애아동 재활시설인 '교남 소망의 집' 을 방문했다는 기사를 사진을 곁들여 1면에 크게 보도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이 참석한 성탄예배 관련기사는 2면에서 다루었고 金대통령에 대한 신도들의 푸대접을 보도했다.

이와 같은 보도태도는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국민들의 관심은 대통령당선자에게 있지 물러나는 대통령에게 있지 않고, 더군다나 실정 (失政)끝에 물러나는 판국에서는 푸대접도 다행스런 일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처럼 당선자와 퇴임예정자를 대칭적으로 보도한 것은 중앙일보를 필두로 극소수의 신문뿐이었고, 나머지 대부분의 신문들은 거의 후자를 무시해 버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칭과 균형을 꾀한 보도가 제대로 된 보도였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보도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균형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신문 전체로 보면 불균형적인 것이라고 지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탄절미사나 예배에서 가톨릭과 개신교회 지도자들의 강론 및 설교의 모습이나 내용이 신문에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거나 소홀히 취급됐다는 것은 문제의 가닥을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물론 성탄절 행사는 해마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고 그런 것이고, 따라서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므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비록 연례행사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신문의 질이 결정된다는 것도 간과해선 안되리라고 믿는다.

더군다나 올해의 성탄절은 여러가지 특징과 의미가 두드러진다고 볼 때 그야말로 소홀한 보도는 유감이랄 수밖에 없다.

나는 올해 성탄절 특징의 하나로 한국개신교가 광복후 처음으로 성탄절 연합예배를 보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개신교의 연합예배는 지금까지 부활절 행사에서만 있었을 뿐 성탄절 행사에서는 초유의 것이라는 점에서도 기사의 비중과 의미를 찾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의 성탄절이 지니는 의미 가운데 하나는 종교지도자들의 경제위기에 대한 메시지 발표가 전례없는 것이었다는 점을 으뜸으로 손꼽고 싶다.

특히 김수환 (金壽煥) 추기경이 성탄절미사에서 행한 강론은 보다 밀도있게 다루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金추기경은 "경제위기의 주원인은 정부가 경제운영을 잘못한 데 있으나 더 큰 이유는 우리 국민이 정직과 성실을 저버렸기 때문" 이라 지적하고 “구세주처럼 나라가 살아야 내가 살고 제목숨을 바치는 사람만이 자기의 목숨을 참으로 살린다는 진리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고 호소했다 한다.

뿐만 아니라 이번 성탄절에 즈음해 우리나라 3대 민족종교의 하나인 원불교에서 성탄 축하메시지를 발표했다는 것도 결코 소홀히 다룰 일이 아니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3대 민족종교는 대종교 (大倧敎).천도교 (天道敎).원불교라고 일컬어지는데 원불교에서 “예수님은 위기의 상황에서 방황하던 인류의 오랜 대망에 부응해 이땅에 오셨다” 며 “위기 상황은 우리 가슴마다 사랑이 타오를때 극복된다” 는 메시지를 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종교상황을 생각할 때 기독교 이외의 종교 지도자들이 성탄절 축하메시지를 발표하고 종교간의 화합을 다진다는 것은 신문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나는 우리나라의 기독교 전래과정이나 기독교도의 인구비율로 볼 때 중국이나 일본과는 전혀 다른 특징을 지닌다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

첫째, 기독교의 전래과정을 보면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서양선교사에 의한 것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애초부터 자발적으로 조선조의 실학자들에 의해 수용됐다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 기독교 전래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이 각각 5백~4백년으로 일컬어진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기독교역사는 2백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기독교도의 인구비율은 중국과 일본이 1%를 넘지 않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그것은 20~25%로까지 일컬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나라의 종교상황과 우리나라 사람의 종교적 심성이 남다름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우리의 전래적인 하느님 사상 내지 홍익인간의 정신풍토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터이다.

전래의 하느님 사상에 따른다면 만교 (萬敎) 는 귀일 (歸一) 이므로 오늘의 우리 종교상황은 하나의 섭리라고 풀이된다.

올해의 성탄절기사에서 비록 가십거리로 다루었지만 불교자원봉사연합회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이웃돕기 모금에 나섰다는 이야기는 좀 더 크게 다루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성탄절 이전의 일이긴 했지만 길상사 (吉祥寺) 개원식에 참석한 김수환추기경의 불상앞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기사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에 대한 답례로 길상사 회주인 법정 (法頂) 스님이 특별히 발표한 성탄절메시지는 아예 무시하거나 소홀히 다룸으로써 균형을 잃고 말았다.

법정스님의 메시지는 '아멘' 이라는 끝마무리 기도까지 담은 회심의 것이었다니 그런 불균형을 더욱 탓할 수밖에 없다.

이규행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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