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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언론 비판과 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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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김종혁 워싱턴 특파원

유치하게 들리겠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람은 미군 총사령관인 미국 대통령이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미국은 군사.경제적으로 유일한 초강대국이 됐다. 연간 국방비가 4000억달러. 2위 일본(500억달러)과 3위 영국(371억달러) 등 2위부터 10위까지 나라들의 국방비를 다 합쳐도 모자란다. 그러나 이런 막강한 미국 대통령도 국내에선 수시로 난타당한다.

마이클 무어 감독이 만든 영화 '파렌하이트(화씨) 911'에 묘사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한마디로 얼간이다. 화면은 무역센터가 비행기 테러공격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은 뒤 안절부절못하는 부시의 모습을 클로즈업했다. '뭘 할지 몰라서, (참모들로부터) 뭘 하라는 코치를 받지 못해 부시는 저러고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진다. 부시 가문은 빈 라덴 일가와 의혹에 가득 찬 석유거래를 하고, 부시 대통령은 할 일을 제쳐둔 채 걸핏하면 휴가를 떠나 골프나 치면서 헛소리를 해댄다는 게 무어 감독의 주장이다.

영화뿐 아니다. 요즘 워싱턴 서점가에는 부시 대통령을 체니 부통령이나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주변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조종되는 꼭두각시로 묘사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표현이 워낙 신랄해 "정말 괜찮을까"하는 '한국적 우려'가 치밀 정도다.

미국 내 양대 신문 중 하나인 워싱턴 포스트 오피니언 페이지에는 날마다 톰 톨스의 만평이 실린다. 여기서 뾰족한 귀에 염소 턱으로 그려지는 부시 대통령은 항상 모자라는 짓만 한다. 뉴욕 타임스의 최근 사설은 이라크 문제를 사과하라고 부시 대통령을 맹비난했었다.

물론 보수적인 FOX TV나 우파 라디오 방송국들은 대통령을 이렇게 대우해도 되느냐'며 분개한다. 하지만 당사자격인 백악관은 그저 묵묵부답이다.

언론 비판을 정부가 간섭하면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는 광범한 공감대와 역사적 경험이 미국 정치의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200년을 내려온 미 헌법 수정조항 제1조가 '의회는 언론.출판의 자유와 평화집회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못박은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최고 권력에 대한 비판이 관용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사회, 그게 진짜 민주주의다.

김종혁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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