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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整理' 힘들다…김대중 대통령당선자-민주노총 첫 대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27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있은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와 민주노총 대표단과의 면담은 한때 고성이 오가는 등 험한 분위기였다.

쟁점으로 떠오른 정리해고, 특히 금융권에 대한 우선 도입 방침을 놓고 서로 격론이 벌어졌다.

오전9시부터 2시간동안 이뤄진 면담은 金당선자가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총이 권영길 (權永吉) 후보를 지원했지만 개의치 않는다" 고 말해 웃음을 유도하는 등 일단 부드러운 분위기로 출발했다.

그러나 정리해고라는 본론으로 들어가며 달아 올랐다. 金당선자는 "IMF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며 정리해고제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1년반안에 IMF관리체제를 벗어날 수 있다" 며 "고통분담이 요구되는 시기인 만큼 함께 난국을 타개해 나가자" 고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민주노총측은 경제파탄 책임자 처벌.재벌 개혁 등의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배석범 (裵錫範) 위원장직무대리는 "정리해고제는 사측 입장만 반영한 것" 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노총의 강경 입장은 엉뚱한 불만으로까지 번졌다.

裵직무대리는 "당선 전만 해도 고용안정을 역설하던 金당선자가 당선 첫날 전두환 (全斗煥).노태우 (盧泰愚) 전직 대통령 사면과 금융실명제의 사실상 무산으로 물러서더니 당선 4일째 미국관리 앞에서 정리해고 도입 가능성을 거론했다" 고 비난했다.

"기대를 걸었는데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는 말까지 나와 분위기는 급격히 냉랭해졌다.

특히 민주노총 간부들은 "인수.합병 때만 고용승계 의무를 풀어주자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괜찮은 기업들마저 정리해고를 남발할 우려가 있다" 고 지적했다.

내년 2, 3월 노동계의 소요설을 거론하며 "이런 일이 생기면 金당선자로서도 국정운영에 어려움이 커진다" 고까지 했다.

그러자 金당선자는 "노.사.정 협의기구를 통해 각계 입장을 평등하게 반영하겠다" 고 전제, "노조의 정치활동 완전 보장" "고용보험제 도입, 신규고용창출 등 실업대책에 만전" 등을 약속했다.

그는 "고통분담은 정부와 기업도 같이 하게 될 것이며 노동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지 않겠다" 고 했지만 완전히 설득시키는데 결국 실패했다.

裵직무대리 외에 자동차연맹.건설노련.민주금융노련.사무노련 등 산별노조 간부들이 배석해 다른 쟁점들도 쏟아졌다.

민주노총측은 "한국은 임시직이 46%로 스페인 다음으로 많은 나라" 라며 근로자파견제 도입에 강력 반발했다.

1시간 30분이 지나 배석했던 金당선자측 인사들이 다음 일정을 이유로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고 하자 裵위원장 등은 "이야기도중 일어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며 항의,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金당선자는 "노.사.정 협의체에서 모든 문제를 논의하자" 고 거듭 제의했다.

면담이 끝난 뒤 김원길 (金元吉) 국민회의정책위의장은 기자들에게 "큰일났네, 큰일났어" 를 연발하며 걱정을 감추지 않았다.

신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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