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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세상보기]누가 한국을 쏘았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당장 숨넘어가던 외환위기를 한고비 넘기고 있는 모양이다.

가쁜 숨을 돌리게 되니까 도대체 왜, 뭣 때문에 이 곤욕을 치러야 하는지 슬그머니 부아가 치민다.

그런대로 잘나가던 한국경제가 몇 달새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단다.

국가부도란 무엇인가.

"나는 채무를 변제할 능력이 없소. 국제사회는 날 잡아 잡수든지, 빚잔치를 하든지 마음대로 하시오. 원금이라도 받고 싶으면 상환일정을 늦추는 것이 좋을 거요. 나는 국제 파산자! 나는 국제 금치산자!" 경제우등생 한국이 이 지경에 몰릴 뻔했다면 이미 그 이름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도대체 누가 한국을 쏘았을까.

"저격수 (狙擊手) 는 국제 기업사냥꾼이란 말이 있어. 그들은 줄기차게 한국 인수.합병 (M&A) 시장이 개방되지 않으면 돈을 한푼도 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놔 왔거든. 그들은 한국이 IMF와 맺은 추가협상을 통해 결국 금융.자본시장의 대폭적인 개방을 얻어냈지. " "그래, 우선 그자들이 의심스러워. 한국의 고금리를 노린 핫머니도 제한 없이 들락날락거리게 됐으니 이제 한국은 그들의 노다지판이 됐어. " "그렇지 않아. 국제 기업사냥꾼의 기린아 (麒麟兒) 조지 소로스는 한국이란 표적은 너무나 불투명하고 아리송하다고 말해. 한국기업들은 은신술이 뛰어나고 정부 보호망이 촘촘해 자신 같은 귀신도 사냥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어. " "그들이 아니라면 아이엠에프씨 (氏) 아닐까. 구제금융을 주며 내건 가혹한 조건은 '옳지 이제야 내 손에 걸렸구나' 하는 투야. " "맞아. 국제 금융계의 대부 (代父) 라는 그가 매번 칭찬을 아끼지 않던 한국에 그렇게 매몰차게 나올 수 있어. '약속한 돈은 약속을 지키면 준다.

약속 이외의 돈은 약속 이외의 것을 약속하면 준다.

약속날짜를 당기고 싶으면 약속이행을 당기면 된다.

왜 떫어?' 하는 식이야. " "이 사람들, 큰일 날 소리 하고 있어. 아이엠에프씨는 한국엔 수호천사야. 그는 한국이 하고 싶어도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고 하지 못한 경제개혁을 단숨에 해치우게 해준 사람이야. 일도양단.쾌도난마의 기법으로 중병에 걸린 한국을 소생시킨 사람에게 감사는 못할망정 의심을 하다니. " "그렇다면 저격수는 도대체 누구야. 아이엠에프씨를 '파괴대리인' 으로 내세워 미국적 방식에 어긋나는 일체의 경제행위를 저격한다는 소문이 도는 유에스에이씨란 말인가."

"정말 큰일 날 소리!

그는 한국이 줄기차게 부르짖었던 세계화를 일거에 달성시켜 준 은인이야. 세계화란 무엇인가.

세계적 규범으로의 대통합 아닌가.

세계적 규범이란 무엇인가.

결국 미국적 규범 아닌가."

"그렇다면 저격수는 닛폰씨 아닐까. 당초에 69억달러의 외채를 빼내 감으로써 한국을 삽시간에 외환위기에 빠뜨린 게 바로 그 아닌가."

"아냐. 자기들 사정이 급하니까 빚을 거둬 간 것이지, 순망치한 (脣亡齒寒) 의 관계에 있는 그가 그럴 리 없어. "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의심 가는 자가 있긴 있어. 틀림없이 수이사이드란 자의 소행일 거야. 그는 우선 단기외채가 얼마인지 알려고 하는 한국의 눈을 가렸어. 멕시코 같이 돼 간다는 경고를 들으려는 귀를 막았어. 외환보유액이 바닥까지 타 들어가는 냄새를 맡으려는 코를 메웠어. 그러니 한국이 그의 저격에서 피할 수 있었을까. " 수이사이드 (Suicide) 씨는 자살.자멸.자해 전문가.

결국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그인 것 같다.

과연 누구 손에 어떻게 저격당했는지 그것이라도 알아야겠다는 것이 1997년을 보내는 한국인들의 비원 (悲願) 이다.

김성호<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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