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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음, 열린종교] 7. 라마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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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몽골 승려 뭉크 어칠은 옷은 달라도 불교는 하나라고 굳게 믿는다. [정대영(에프비전 대표)]

라마교는 티베트 불교의 또 다른 이름이다. 라마는 덕 높은 고승을 말한다. 달라이는 '큰 바다'라는 뜻, 즉 달라이라마는 '큰 바다처럼 덕 높은 스승"이다. 라마교가 티베트에서 몽골로 전해진 건 천만다행이다. 중국의 침공을 피해 망명한 달라이라마는 북인도 다람살라에서 라마교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라마교의 온전한 전통을 볼 수 있는 곳은 몽골이다. 인구의 90% 이상이 라마교 신자다.

몽골의 역사는 화려했다. 그러나 천하를 호령했던 칭기즈칸도 20세기 공산정권에 의해 제국주의자.전쟁광으로 낙인찍혔다. 라마교 사원 역시 700개가 넘게 헐렸고, 지위가 박탈된 승려들은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라마교는 쉽게 죽지 않았다. 1990년 새 민주정부가 수립되자 칭기즈칸 복권운동과 함께 라마교도 종전의 화려한 모습으로 부활했다. 사찰 250개가 복구됐고, 승려 3000여명도 옛 지위를 되찾았다.

라마교 승려 뭉크 어칠. 동국대에서 한국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난생 처음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2004년 1월 1일 인천공항에 착륙, 한국에 유학온 첫 몽골 스님이다. 앞으로 2년간 한국말과 한국 불교를 배워 양국의 불교 교류에 한 몸 바치겠다는 집념이 대단하다. 한국을 택한 이유를 묻자 "몽골 반점이 있으니 같은 민족이 아닌가요"라며 웃는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태어난 그는 90년 여덟살 때 스님이 됐다. 이름의 뜻을 묻자 이제 막 깨우친 한글로 뭉크는 '영원함', 어칠은 '다이아몬드' 라고 적어주었다. 스님인 아버지가 지어주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도 스님이었으니, 3대째 내려온 스님 집안이다.

그래서일까. 천진한 얼굴에 수줍음이 가득해 체구만 조금 클 뿐 꼭 동자승 같다. 한국어 공부를 위해 '한몽사전' 암기를 막 끝냈다는 그는 만날 때마다 일취월장한 한국어로 나를 놀라게 한다. 가끔 승복을 벗고 빨간 티셔츠에 청바지도 즐겨 입는 신세대 스님이나, 큰 스님다운 면모도 있다.

그는 매달 두 번 서울 조계사에서 몽골인 법회를 연다. 한국에 있는 몽골 노동자가 2만명이 넘으면서 그들을 위한 법회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한국 곳곳에 흩어져 일하는 몽골인이 조국에서 온 스님 한 분을 중심으로 집결된다.

라마교는 13세기 몽골로 전해졌다. 중국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가 티베트를 점령하면서 티베트 승려 파스파를 몽골 왕실에서 초청한 것. 티베트어를 기본으로 한 몽골 문자 파스파도 제정됐다. 스님에게 라마교의 기본 가르침을 물었다.

"다른 불교와 다르지 않아요. 부처님이 갔던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죠. 즉신성불(卽身成佛), 이 몸을 가진 채 부처가 될 수 있으니 살아서 성불해야지요. 제 인생의 최대 목표입니다."

스님에게 한국이 낯설듯 우리에겐 라마교도 생소하다. 그러나 그는 어떤 옷을 걸쳤든 불교는 하나라고 말한다. "한국에 와 보니 승복의 색상과 디자인만 다를 뿐 모두 같은 불교더군요. 스타일과 관계없이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 하나로 귀결되니까요."

라마교가 한국 불교와 다른 게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치의 의심 없이 믿는 환생이다. "다시 태어나도 스님이 되고 싶으냐"고 하자 스님은 "반드시 스님이 되겠다"고 대답했다. 다이아몬드 같은 그의 믿음이 양국을 잇는 단단한 다리가 되기를 빌어본다.

김나미 작가.요가스라마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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