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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1인 1장학 계좌운동’ 첫 결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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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울 송파구의 한 고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신모(16)군은 학교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집으로 향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다른 친구들처럼 영어·수학 학원에 갈 경제적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신군의 아버지는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다 장사가 어려워져 식당을 정리하고 중국집 배달원으로 나섰다. 식당 일을 돕던 어머니도 몸이 아파 일손을 놨다. 신군은 “경찰대에 가려 하지만 자신이 없다”며 “학원에 가 실력을 더 키우고 싶다”고 털어놨다. 최근 신군에겐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송파구에서 시작한 ‘1인 1장학 계좌’의 첫 수혜자로 선정된 덕택이다. 신군은 1년에 두 차례 100만원가량의 학비를 지원받게 된다.  

1인 1장학 계좌는 신군과 같은 청소년들이 꿈을 잃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학제도. 김영순 송파구청장이 지난달 “한 명이 1만원씩만 내도 쌓이면 큰돈”이라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주민 한 명이 한 달에 1만원씩 장학계좌를 열고, 그 돈을 모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의 학비를 대주는 방식이다. 계좌 기한은 최소 1년이고, 후원하고 싶은 만큼 장학계좌를 열 수 있다. 모집 한 달여 만에 3000여 명이 신청해 4000여 개가 넘는 장학계좌가 열렸다. 자동이체를 통해 모인 돈은 8000여만원이나 됐다.

자신에게 전달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놓은 독거노인, 주민 아이디어 시상식에서 받은 상금을 내놓은 50대 가장 등 평범한 이웃들이 계좌를 열었다. 네 가족이 각자 두 계좌씩 만든 정옥자(49·주부)씨는 “외환위기 때 아빠의 사업이 잘 안 풀려 아들과 딸이 당시 서울시 장학금으로 고등학교를 마쳤다”며 “이젠 우리가 되돌려 줄 차례”라고 말했다.

첫 수혜자는 긴급한 학비 지원이 필요한 103명(중학생 19명, 고교생 84명)이 선발됐다. 갑작스레 파산한 가정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담임교사와 학교장의 추천을 받았다. 송파구는 중학생에겐 50만원, 고교생에겐 100만원씩 매년 두 차례 이상 지원한다. 일단 선발되면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계속 주기로 했다. 앞으로 매 학기 학교장에게 추천을 받아 장학금 지급을 늘릴 계획이다. 후원하려면 동주민센터나 송파구청을 방문해 ‘장학계좌 신청’을 할 수 있다.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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