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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제독의 연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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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순애보의 위력을 단적으로 증명한 사례는 ‘타이타닉’(1997)이다. 신분 차를 뛰어넘었으나 호화유람선의 충돌 사고로 끝내 수장된 불멸의 사랑은 역대 세계 흥행 수입 1위로 등극하며 그 위력을 과시했다. 규모와 밀도 면에서 차이가 나긴 하지만 러시아 영화탄생 100주년 기념작인 ‘제독의 연인’도 동일한 소재로 관객들의 약한 구석을 파고든다. 1917년 일어난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 주요한 갈등 요인이다. 5년의 사랑 끝에 50년을 기다려야 했던 순애보가 한 영화 촬영장 엑스트라로 대기 중이던 한 백발 여인의 회상을 통해 잔잔하게 펼쳐진다.

‘타이타닉’의 두 연인을 가로막은 것이 계급 차였다면, 해군 함장이자 러시아의 마지막 제독 알렉산드르 코르챠크(콘스탄틴 카벤스키)와 부하의 아내 안나(엘리자베타 보야르스카야) 사이의 걸림돌은 각자의 가정과 혁명이다. 사랑의 순도를 더욱 강조하기 위함이었을까. 영화는 불륜의 비극성보다는 혁명으로 인한 시대적 한계에 무게중심을 둔다. 신기할 정도로, 한편으로는 아쉬울 정도로 변변한 베드신 한 번, 여운 남는 키스신 한 번 없는 대신 “기다림은 형벌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내용으로 채워진 플라토닉한 서신교환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코르챠크가 군인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공산세력과의 내전에 나가자 안나는 먼 발치에서라도 연인을 지켜보기 위해 간호병으로 몰래 참전한다.

사랑이 세속성을 벗고 종교의 수준까지 이를 수 있다는, 다분히 감상적일 수 있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잃지 않는 데는 이 영화가 실화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도 상당 부분 작용한다. 제작진은 러시아 해군함대 보관소에서 발견된 안나의 편지 53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러시아와 독일의 발트해 해전 재현이나 300벌이 넘는 시대의상 등 고증 부분은 2000만 달러를 들인 블록버스터 이름값을 해낸다. 감독 안드레이 크라프추크.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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