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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ITF 지부들 전향 도미노…회원국 100개 넘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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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008년 9월8일 이후 7개월. 국제태권도 연맹(ITF)에 날개가 돋았다. 연맹 창시자의 아들인 최중화 총재가 전향하기 이전에는 친북단체로 찍혔던 ITF가 변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전세계 57개국에서 축하 메시지가 날라들었고, 그 덕에 가맹 회원국이 30개가 늘어 102개국이 됐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회원 불어나는 속도가 이전의 3~4배라고 즐거운 비명이다. 한국 정착 준비도 본격화 됐다.최 총재로부터 '7개월 동안의 ITF 변화'를 들어봤다.

국제태권도연맹(ITF)의 최중화 총재가 9일 자신의 전향이 1면 특종기사로 나온 2008년 9월 7일자 중앙SUNDAY를 들고 당시의 소회를 얘기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2008년 9월 8일 월요일 오전. 일본 나리타 공항을 이륙해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1등석에서 국제태권도연맹(ITF) 최중화 총재는 초조했다. 34년 만의 귀국. 서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전두환 전 대통령 암살 모의를 하고, 김일성 훈장까지 받고, 평양에서 공작 교육도 받았는데…당국의 선처를 약속받았지만 다 믿을 수 있을까. 스튜어디스가 신문을 줬다. 중앙SUNDAY였다. 대문짝만 하게 그의 얼굴과 전향 기사가 실려 있었다(최씨의 전향은 중앙SUNDAY의 특종이었다). 놀랐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문이 열리자 연결 통로에 까맣게 진을 치고 있는 카메라만 눈에 들어왔다. 기자회견을 하고, 당국의 추가 조사를 받고, 기소되고, ‘공소보류’라는 선처를 받은 뒤 10여 일 만에 캐나다로 돌아갔다. 캐나다 시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 후 7개월. 최씨는 다시 서울을 찾았다.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이다. 그동안 국제 ITF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9일 출국 직전의 최 총재를 만났다.

-전향했다고 ITF 내외부에서 비난이 많지 않았나.
“아니다. 캐나다로 돌아간 2주일 뒤 노르웨이를 갔더니 그곳 ITF 지부장이 ‘축하한다’고 했다. ‘이 노르웨이 촌구석까지 전향 소식이 알려졌다. 기쁘고 즐겁다’고 하더라. 영국에서는 ‘BBC 방송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에서 내릴 때부터 촬영한 동영
상도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 정도 소식이 퍼졌나.
“트래브 니콜스 연맹 사무총장이 ‘대한민국 귀국 기자회견 후 57개국에서 축하 메시지가 왔다’는 얘기를 해 줬다. 축하한 사람에는 지부 대표도 있고, 일반인도 있다. 다들 ‘이렇게 되는 것을 원했다’고 했다더라.”

-7개월 만에 소감을 말한다면.
“중앙SUNDAY가 세계 태권도 역사를 바꿨다고 말하고 싶다. 기사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내 과거만 해소된 게 아니다. 연맹 회원국들도 이제야 비로소 ITF가 태권도의 뿌리인 한국과 연결됐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더라. 나는 한국과 한국인을 더 강조할 수 있게 됐다. 전에는 들어올 수 없지 않았나.”

-전향 이후 회원국에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중앙아시아 몇 나라의 친북 ITF 지부가 우리로 넘어왔다. 러시아 ITF는 북한과 가까운 관계였는데 최근 그쪽 지부장이 우리 러시아 지부장에게 면담 요청을 해 왔다. 전향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체코도 흥미롭다. 체코에서는 북에서 온 사범들이 직접 가르친다. 그래서 지부가 넘어오기는 어렵다. 대신 회원들이 넘어온다. 두 달 전 체코의 교습에 내가 갔는데 검은띠 사범 200여 명이 왔다. 통상 검은띠 한 명이 50명 정도를 관리하므로 1000여 명의 회원이 넘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우리 뒤에 이렇게 나쁜 나라(북한)가 있었구나. 태권도를 테러에 이용한다’고 비난했다.”

-공식 집계는.
“이전 70여 개국에서 현재 102개국으로 늘었다. 곧 모로코가 가입한다. 태권도 창시자인 최홍희 총재가 작고한 2002년 이전의 모습으로 연맹이 돌아가고 있다. 요즘은 제3세계에서 많이 들어온다. 지난해 아프리카에서 19개국이 들어왔다. 앞으로 아프리카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사범들은 주로 유럽에서 간다. 아프가니스탄에도 1년에 5~6번 정도 사범을 보낸다.”

-이번이 기회다 싶어 마구잡이로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아니다. 기준이 있다. ITF의 태권도 기술을 구사해야 하며 규모도 적절해야 한다. 문서로 가입 신청을 하면 사무총장이 직접 가 심사한다.”

-총재의 전향으로 장웅 북한 IOC 위원이 총재로 있는 친북 ITF가 어려워졌을 것 같다.
“정확한 것은 모르겠지만 장웅의 신세가 나빠진 것 같다. 사무실도 없이 오스트리아 빈 본인의 집에서 사무를 본다고 들었다. 집에 팩스를 들여다 놓고, e-메일 체크를 하면서 업무를 본다고 한다. 회원이 주니까 회비도 줄어 사무실 유지가 어렵게 됐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베트남계 ITF 대표인 트란콴과의 민사 소송에서 패해 사무실과 연맹 통장이 모두 압류된 탓도 있을 것이다. 이 소송이 중요한 것은 장웅이 친북 ITF 총재로 선출된 평양의 비상 총회를 빈 법원이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웅은 정통성이 없다.”

(인터뷰 자리에 있던 한국 ITF 지부의 오창진 대표는 ‘장웅 ITF가 인터넷 서버 호스팅 비용을 내지 못해 최근 서버가 중단됐다는 말도 들었다. 우즈베키스탄 같은 곳에선 친북 ITF 본부가 돈을 보내라고 독촉해 힘들어한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장웅 ITF가 국내에도 진출했다고 들었다.
“2006년부터 서울 한남동에 있던 장웅 ITF 지부는 나의 전향 이후 해산됐다.”

-아무리 그래도 최 총재의 ITF는 세력이 미미하다는 게 세계태권도연맹(WTF)의 의견이다.
“장웅의 비합법 단체를 WTF와 한국의 전 정권이 합법적으로 만들어 줬다. 남북 스포츠 교류는 있을 수 있지만 대표성 없는 친북 ITF와의 교류를 대표성 있는 것처럼 하고 있다. 섭섭했다.”

(서울의 WTF 관계자는 “한국에 진출하려는 ITF의 움직임을 안다. 그런데 세 개로 갈라져 있는 ITF의 내부를 먼저 정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또 “지금까지 북한의 장웅 ITF와 협상해 왔는데…”라고 말했다. 최중화 ITF를 상대하는 게 곤혹스럽다는 인상이다.)

-최중화계 ITF가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나.
“대한민국 지부는 2001년 12월 설립됐다. 그동안 준비를 주로 해 왔는데 내가 전향한 뒤 급속도로 회원이 늘어났다. 이전보다 서너 배씩 늘었다고 할까. 지금까지 지도자(사범 포함)만 2000여 명이 나왔고, 회원 수는 3만 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이번 방문 목적은.
“내년 7월로 예정된 제15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는 문제 때문에 왔다. 3년마다 대회를 하는데 이번엔 서울에서 하려 한다. 또 ITF 회원 3000만여 명이 각종 자격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월드트레이닝센터 설립도 모색하고 있다. 또 나에게 활동할 기회를 준 대한민국 정부에 감사하고 싶기도 했다.”

-한국 진출은 어떻게 하려 하나.
“ITF는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기술 체계와 연맹 조직 체계를 재정비하려 한다. 캐나다에 있는 본부를 서울로 옮겨 오려 한다. 현재 영국에 있는 사무국도 옮길 것이다. WTF에는 신경이 쓰일 것이다. 그러나 마찰 없이 부드럽게 진출하겠다. 서로 돕지 못할망정 싸워 힘을 약화시키고 싶지 않다. 해외에서 싸우지 말고 공조하자고 말하고 싶다. 올림픽에서 WTF의 태권도 종목이 약화되고, 퇴출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렇게 되지 않도록 뒤에서 열심히 돕겠다.”

-WTF 조정원 총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했나.
“8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 총재의 화보 출판기념회에 갔다. 말을 많이 주고받지는 않았고, 조 총재가 ‘대한민국을 위해 수고한다’는 정도의 말만 했다.”

-WTF와 통합할 계획은 없나.
“기능 통합은 어렵다고 본다. 본부 기구를 따로 둬 제3의 인물이 대표가 되고 두 단체가 그 우산 아래 같이 들어가는 방식이라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WTF와 태권도 대결을 해 화끈하게 데뷔하지 그러나.
“규칙이 달라 상호 대결은 어렵다. ITF 태권도는 얼굴을 가격할 수 있지만 WTF는 그렇지 않다. 그런 만큼 룰을 바꾸기 전까지는 안 된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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