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업간 인수·합병때 유휴인력 해고허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국 경제의 '기술적 파산상태 (technical default)' 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 진영을 진땀나게 만들고 있다.

金당선자측의 비상경제대책위 6인이 23일 회동에서 상견례조차 없이 '메가톤급' 처방을 건의키로 한 것은 이같은 위기적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당선자측 대책위 대표인 김용환 (金龍煥) 자민련 부총재는 대책초안을 작성하느라 22일 밤을 꼬박 새웠으며 바로 23일 아침 당측 6인위원회 모임을 주재했다.

김원길 (金元吉) 국민회의 정책위의장도 임창열 (林昌烈) 경제부총리와 정부종합청사에서 심야회동한 뒤 새벽부터 일산의 金당선자 자택을 찾아 현안을 정리했다.

6인위에선 "기업간 인수.합병 (M&A) 시 피합병기업의 근로자를 인수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야한다" 는 의견이 제기됐다.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당선자 취임전 법제화될 게 분명해 보인다.

노동관계법상의 '정리해고 허용조항' 을 뛰어넘는 초대형 조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게 대책위의 기본인식이다.

벼랑끝 외환위기를 탈출하려면 국제신인도를 높여야 하는데 이 정도 수준의 노동시장 자유화는 요지부동의 선행조건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재벌 대기업의 경영투명성 보장, 부실금융기관과 부실대기업의 자유로운 파산및 M&A도 미국과 국제통화기금 (IMF) 이 요구하는 '원활한 외환공급' 의 선행조건들로 현재로선 불가피한 조치다.

이제 부실기업들의 도산과 이에 따른 실업자의 속출이 '예외적이라기보다 상시적인' 상태가 될 건 불보듯 환하다.

당선자측 6인위는 오전회의에 이어 박태준 (朴泰俊) 자민련총재를 만났고 오후엔 정부측과 함께 12인회의를 한 뒤 金부총재가 金당선자 자택에 달려가 최종 재가를 받는 등 긴박한 하루를 보냈다.

현실은 연내 '대외채무지급 불이행 (파산) 선언' 의 비관적 전망마저 일부에서 나올 정도다.

미국 등 선진국은 차제에 한국경제의 체질개선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이고 보니 金당선자가 연내에라도 미국의 증권시장인 월가 (街) 를 방문해 국제금융투자가들에게 '구원의 손길' 을 요구하는 것이 어떤가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그러나 기초여건과 믿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해놓고 새해 들어 방미 (訪美) 하는 게 순서라는 입장이 많았다.

대책위는 극약처방과 함께 국민에게 '경제진실' 을 금명간 알릴 방침이다.

金당선자도 "외국에선 손바닥 보듯 알고 있는 한국의 경제사정을 우리 국민들만 모르고 있다" 며 "진실에 기초한 국민적 동의만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힘" 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크리스마스 직후 한국노총.민주노총 등의 노조 지도자들과 만나 노동시장 개혁과정에서 희생을 '강요당할' 근로자의 협조를 구할 예정이다.

전영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