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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미약처럼, 붙이는 치매약 시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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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호 15면

요즘엔 고령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듯 TV 드라마에도 치매 노인이 종종 등장한다. SBS-TV의 ‘가문의 영광’에서 할머니 윤삼월(김영옥 분)도 치매 환자다. 약 복용을 자주 잊어버리고 약을 뱉어내기도 해 시청자를 안타깝게 하던 윤 할머니는 패치형 치매 약을 붙이게 되면서 안정을 되찾는다. 보통 입으로 복용하는 치매 약물만 있는 줄 알았는데 손쉽게 붙이는 패치 약이 있다는 걸 처음 안 시청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원장원의 알기 쉬운 의학 이야기

피부에 붙이는 패치가 의학적인 목적으로 가장 먼저 사용된 것은 1970년대에 등장한 차멀미 예방약이다. 점점 그 기술이 발달해 최근에는 관절염·파킨슨병·우울증·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협심증 등의 치료제에서부터 금연 보조제, 여성호르몬제 등에까지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패치형 치매 치료제의 경우 주로 초기 혹은 중기의 치매에 사용된다. 털이 없는 허리나 등·팔뚝 등에 붙이면 된다.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 12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임상연구 결과 가짜 약을 먹은 경우에 비해 기억력 및 일상활동 유지 능력이 개선되었다. 또한 기존에 사용되어 온 같은 성분의 먹는 약과 비교했을 때 효능은 동등한 반면 오심과 구토 같은 소화기 부작용의 발생은 3분의 1로 감소하였다. 미국 식품의약국과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승인받은 패치형 치매 치료제는 최근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약물로도 등재됐다.

패치는 피부를 통해 약물이 일정하게 지속적으로 흡수되어 효과가 오래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 또 사용하기가 간편해 치료 중단율도 낮다. 복용하는 치매제는 6개월이 지나면 3명 중 1명 이상이 약물 복용을 중단한다는데, 패치는 그럴 염려가 적은 것이다. 그리고 패치는 약 사용 여부를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즉, 노인들은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잊기도 하고 반대로 약을 복용한 사실을 잊고 중복 복용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곤 하는데, 패치를 사용하면 이런 위험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먹는 약처럼 식전에 먹어야 하는지, 식후에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이 언제든 붙여도 되는 것도 장점이다. 더구나 치매 노인은 대개 여러 가지 다른 질병을 함께 앓고 있어 평균 서너 개의 약물을 복용하는데, 패치형을 사용하면 약물 부작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아직까지는 매일 새로운 패치를 붙여야 하지만 최근에는 1주일에 1회만 붙여도 되는 치매 치료제가 개발되어 시판 준비 중이라고 하니 좀 더 간편하게 치매를 조절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보인다. 사실 세계적인 노령화로 인해 치매 치료제에 대한 기술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백신을 이용한 치매 치료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에게 치매를 유발하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에 대한 면역 주사를 주어 치매 증상을 개선하는 백신이 개발 중이다. 긍정적인 결과를 보고한 경우도 있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대상자의 약 6%가 뇌수막염을 일으켰다는 보고가 나온 후로 개발이 주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백신이 수년 내에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할 것은 현재까지 개발된 약제들이 치매의 진행을 중단하거나 완치시키는 약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병의 진행을 늦추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치매 노인을 돌볼 때 약물을 주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애정과 관심이야말로 환자의 상태를 개선하는 가장 좋은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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