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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우주여행 눈앞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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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919년 미국 뉴욕에서 호텔업을 하는 대부호가 뉴욕과 파리를 잇는 북대서양 무착륙 비행에 처음으로 성공한 사람에게 상금 2만5000달러를 걸었다. 이후 8년간 수백명의 야심찬 젊은이들이 도전한 끝에 1927년 5월 20일 찰스 린드버그가 '세인트루이스의 정신'호를 타고 무착륙 대서양 횡단에 성공하면서 이른바 오티그상을 받게 된다.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한 린드버그의 역사적인 비행은 '비행기는 위험하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1년 만에 전 세계 비행기 수를 네배로, 비행기 승객 수는 30배로 늘어나게 만들었다고 한다. 피나는 노력과 기술 극복이 필요한 '도전'에는 상금만큼 효율적인 것도 없는 모양이다.

최근 민간인 우주비행선 분야에서도 다시금 '상금'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 X-프라이즈 협회(X-prize foundation)는 순수하게 민간 자금과 기술로 만든 로켓에 사람 세명을 태우고 지상 100km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2주 동안 2회 반복한 최초의 팀에 120억원의 상금을 걸었다. 기한은 2004년 12월 31일까지.

지금까지 미국.캐나다.러시아 등 7개 나라의 30개 가까운 팀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최근 미국의 스케일드 컴퍼지츠사의 '스페이스십 원'(Spaceship One)이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전 세계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는 스페이스십 원은 모선(백기사 호)의 배에 붙어 지상 15km까지 올라간 뒤 고체연료와 액체연료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엔진을 가동해 음속의 세배 속도로 90초간 비행해 지상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긴 하지만, 이 사건은 민간인 우주여행 시대가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이스십 원의 팀장이자 비행선 디자이너이기도 한 버트 루턴은 이미 1981년 세계 최초로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비행기 '보이저'를 타고 한번도 급유받지 않고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성공했던 인물이다. 그는 "1억원 정도면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는데, 그런 날이 온다면 X-프라이즈에서 내건 상금 120억원쯤은 아무것도 아니리라. 전문가들은 민간인 우주비행 시장을 연간 매출액이 수조원에 이르는 황금 보고로 전망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우주비행이 국가적 차원에서 대규모로 진행되었지만, 개인이 투자해 만든 우주선이 비행에 성공한다면 '저렴한 비용으로 우주비행을 할 수 있는 시대'가 곧 열리게 될 것이다. 몇 해 전 미국에서 나온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주비행에 필요한 경비가 3억원 이하로 내려간다면 우주비행을 하겠다'고 대답한 사람이 무려 70%에 달했다. 아직은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아 머뭇거리는 사람이 있겠지만, 충분한 검증절차를 거친 뒤에는 우주비행이 일상화될 것임을 추측하게 만드는 설문결과다.

하루에도 수만대씩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오늘의 모습을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처럼 30년 후 비행기의 역사가 어떻게 새로 쓰이게 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그렸던 우주선을 타고 가족여행을 떠나는 상상화가 곧 현실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생각의 속도를 무섭게 따라잡고 있는 과학기술의 속도를 실감하게 된다.

아직은 남의 나라 얘기에 불과하지만, 거대한 민간인 우주비행 산업을 생각하면 군사적인 이유로 묶여 있는 로켓개발을 마냥 늦출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리 손으로 만든 로켓을 타고, 이 거대한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의 섬' 지구가 뿜어내는 경이로움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시스템학

◇약력:한국과학기술원(KAIST) 졸업, 신경물리학 박사, 미 예일대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