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지난 11월26일부터 12월17일까지 중앙일보의 조사결과는 1, 2위 주자간의 살얼음판 승부양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단순지지도에서는 김대중 국민회의후보가, 판별분석에서는 이회창 한나라당후보가 각각 미세하게 앞서 선두를 장담할 수 없었다.
선거 D - 1일인 17일 김대중.이회창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후보의 지지율은 각각 36.7%, 36.6%, 18.1%였다.
기타 후보 1.5%, 부동층은 7.1%. 김대중후보와 이회창후보의 격차는 허용오차 범위 (±2. 17%) 보다 훨씬 작은 0.1%포인트에 불과했다.
한편 부동층에 대한 판별분석과 연령별 예상투표율 (전체 81.8%예상, 20대 71.6%, 30대 83.4%, 40대 88.8%, 50대 89.8% 예상) 을 적용한 결과 이회창후보 40.1%, 김대중후보 39.2%, 이인제후보 19.1%.이회창후보가 金후보를 0.9%포인트 앞서 판세예측을 더욱 힘들게 했다.
결국 선거 하루전까지도 선거결과에 대해 한치앞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1, 2위가 팽팽히 맞선 셈이다.
따라서 선거결과는 '지역별.연령별.성별 투표율의 차이' 와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는 75만명의 부재자표 향방, 사표방지심리의 작동여부가 최대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또한 누가 이기더라고 압도적인 표차는 기대하기 힘든 것으로 전망됐다.
중앙일보는 여론조사결과의 공표금지 이후 2~3일 간격으로 전국 유권자 2천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해왔다.
각 조사의 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에서 ±2. 7% 내외였다.
이 기간중 매주 1위가 바뀔 정도로 김대중후보와 이회창후보는 엎치락 뒤치락했다.
11월 중순 이후 이인제후보의 지지율이 30%이하로 떨어지는데 반비례해 이회창후보의 지지율은 상승했다.
11월18일을 기점으로 이회창후보 28.1%, 이인제후보 27.9%로 역전됐다.
이후 이회창후보의 지지율은 급상승세를 보여 11월26일에는 이회창후보 36.2%, 김대중후보 34.1%로 李후보는 그간 1위를 계속적으로 고수해 왔던 金후보까지 따라잡는 기세를 보였다.
그러나 李후보의 기세는 '경제실정론' 공방이 벌어지자 다시 꺾이고 말았다.
12월1일의 '1차 TV합동토론회' 직후인 2일의 조사에서는 다시 김대중후보가 34.7%로 34.0%인 이회창후보를 앞서기 시작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 정국은 金후보의 지지율 상승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유권자들의 피부에 경제위기의식이 와닿기 시작한 것이다.
12월5일에는 김대중후보 36.7%, 이회창후보 32.0%로 1, 2위간 지지율차가 4.7%포인트로 벌어졌다.
뒤이은 7일의 2차 TV 합동토론은 金후보와 李후보의 지지율차를 더욱 벌려 놓았다.
金후보의 'IMF재협상론' 은 당시 시점에서는 유권자의 상한 자존심을 살려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때 金후보 지지율은 38.6%, 李후보는 31.2%였다.
지지율차는 7.4%포인트. 법정선거운동기간중 金후보가 李후보를 가장 많이 따돌린 순간이었다.
이런 두후보의 각축전 와중에도 이인제후보는 21%내외의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해 더 이상의 하락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경제실정론과 IMF해법에 대한 金후보의 이슈 선점 (先占) 으로 승리가 거의 굳혀지는 듯하던 시점에 외환부족위기와 함께 터진 'IMF재협상 발언시비' 는 판세를 다시 급반전시켰다.
이회창후보가 金후보의 발언을 붙잡아 전면 광고전을 벌이는 등 역공을 펴자 그 효과는 11일 조사에서 즉각 반영됐다.
이 때 金후보 지지율은 36.8%, 李후보는 35.5%로 지지율차가 불과 1.3%포인트로 좁혀졌다.
두 후보간의 'IMF재협상' 공방은 14일의 3차 TV합동토론회에서 金후보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입혔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날인 15일 조사에서 金후보는 35.3%, 이회창후보는 34.8%로 0.7%포인트차로 좁혀졌다.
급기야 16일 판세는 역전됐다.
李후보가 36.6%로 34.4%를 얻은 金후보를 2.2%포인트 따돌린 것이다.
그러나 선거 하루전 이인제후보의 지지율이 18.1%로 떨어지자 판세에 미묘한 변화가 다시 일어났다.
金후보가 36.7%로 다시 올라 李후보 (36.6%) 와의 지지율차는 불과 0.1%포인트가 됐다.
김행 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