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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동영에 찍힐라 … TK·호남 의원 유세장 안 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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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붕어빵에 붕어가 안 들었다는 건 조크일 뿐이다. 그러나 4·29 재·보선 표밭에서 붕어빵 조크가 현실화하고 있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6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경북 경주로 달려갔다. 하지만 지원유세장에서 대구·경북(TK) 의원들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이곳에선 당의 정종복 후보가 친박근혜를 내건 무소속 정수성 후보와 맞붙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날 정 대표의 전주 유세에 민주당 전남·전북 의원들은 대부분 손사래를 치며 동행하지 않았다. 박근혜와 정동영의 힘이 만들어 낸 표밭의 역설이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中)가 16일 울산시 호계동에서 박대동 후보(왼쪽에서 넷째)와 손을 들어 당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희태 “경주 발전은 집권여당 후보만이 가능”…친박 후보 직접 비판은 자제

“어떻게 하면, 무슨 말을 하면 표를 주시겠는가.”

16일 낮 경주시 외동읍 동사무소 앞.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의 유세차량에 올라선 박희태 대표의 호소였다. 그는 “경주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집권여당 한나라당의 정 후보밖에 없다”며 “(정 후보의) 힘이 좀 부족하면 나와 둘이 손잡고 뛰겠다”고 말했다.

유세 연설의 고정 메뉴는 상대 후보 비판이다. 박 대표는 그러나 이를 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새로 된 사람이 국회에 들어오면 일을 못한다. 누구한테 부탁하고 어떤 인맥을 찾아서 해야 하는지 모른다. 화장실이 어디 있고 옆방에 누가 있는지 알다 보면 3년이 다 가게 된다.” 국회의원직에 첫 도전하는 무소속 정수성 후보 대신 재선을 꿈꾸는 정종복 후보를 찍어 달라는 얘기였다.

박 대표의 이 같은 연설엔 경주 재선거의 미묘함이 있다. 친이와 친박 진영이 싸우는 사실상의 내전(內戰) 말이다. 지난해 4·9 총선의 재판이기도 하다. 당시 박근혜 전 대표가 공천에 대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말한 이후 공천심사위 간사를 지낸 정종복 후보는 친박 진영의 타깃이 됐고 낙선했다. 박 전 대표와 맞섰던 이재오·이방호 전 의원도 같은 운명이었다. 친이계 인사들 사이에서도 “박 전 대표와 맞서다가 정치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퍼졌다. 이번 선거에서 정종복 후보는 물론 당 지도부와 친이 진영이 박 전 대표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이유다.

이런 기조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에도 적용됐다. 박사모 정광용 회장은 이날 “무소속 정수성 후보를 지지한다”며 “이번 지지 선언은 자체 결정이지만, 박사모가 ‘박심(朴心)’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은 과거와 달리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당 관계자는 “박 전 대표와 관련된 일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전했다. 미묘함은 친박 또는 대구·경북 의원들의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경주에 좀처럼 발을 들여놓지 않고 있다. 정종복 후보를 지원할 수도, 그렇다고 해당(害黨)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정수성 후보를 위해 움직일 수도 없는 까닭이다. 실제 이날 당 지도부 유세단 가운데 친박계인 허태열·송광호 최고위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구의 한 재선 의원은 정수성 후보에 대한 사퇴압력 논란에 대해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한 박 전 대표의 말을 인용하며 “박 전 대표가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어떻게 경주를 찾을 수 있겠느냐.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허태열 최고위원은 “참 곤혹스럽다”고 토로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오른쪽에서 둘째)가 16일 인천시 갈산역에서 홍영표 후보(右)의 손을 잡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인천=김형수 기자]

정세균 “정치 환멸 부추기는 무소속 연대 안 돼”…전주 유세서 정동영·신건 비판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16일 전주로 달려갔다. 선거대책본부 출정식을 여는 덕진(김근식)과 완산갑(이광철) 후보에게 힘을 싣기 위해서다. 같은 날 출정식을 여는 무소속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기세에 맞불을 놓자는 의미도 있었다. 힘을 모으기 위해 정 대표는 호남 지역구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동행을 요청했지만 결국 일행은 단출했다. 전북 지역 8명(정 대표 포함)의 소속 의원 중 따라나선 사람은 강봉균(군산)·최규성(김제-완주) 두 사람뿐이었다. 전주 완산을의 장세환 의원은 “지도부 마음대로 공천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지원 요청이냐”고 말했다. 이강래(남원-순창) 의원은 “신건 전 국가정보원장과는 절친한 사이”라는 이유로, 김춘진(고창-부안) 의원은 “인천 부평을 선거를 돕게 해달라”며 피했다. 장 의원은 정 전 장관과 전주고 48회 동기생이고 이 의원은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정 전 장관 캠프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었다. 전남·광주 지역 의원들은 주로 상임위 활동을 이유로 서울에 남았다. 전주 두 지역 총괄 선대위원장을 맡은 박주선(광주 동) 최고위원만 정 대표와 함께 궂은 일정을 소화했다.

텃밭에서 전쟁터로 돌변한 전주에 내린 정 대표는 굳은 표정이었다. 정 대표는 전북도당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정동영-신건’ 무소속 연대를 직접 겨냥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과 싸워야 할 당을 흔들고 분열을 획책하는 건 대의가 아니고 소의”라며 “국민의 정치 환멸을 부추기는 무소속 연대는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주선 최고위원도 “민주당에 가장 큰 은혜를 입고 정권에서 가장 혜택을 받았던 분들이 당이 몸부림치는 순간에 당을 쪼개고 때려 부수려 한다”며 “전주 시민들이 현명한 선택을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도 지지 않았다. 전북대 옛 정문 앞에 모인 700여 청중 앞에 선 그는 “정말 많이 밀어주셨는데 실패했다. 용서해 달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칼 끝은 민주당 지도부를 향했다. 정 전 장관은 “ 이명박 정부를 심판해야 할 이번 선거를 정동영 죽이기 선거로 만들어낸 민주당이야말로 당장 바뀌어야 할 대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정 대표와 정 전 장관은 전주 모래내 시장 앞에서 비슷한 시각 유세 일정이 잡혔다. 그러나 정 전 장관이 정 대표 측이 오기 직전 자리를 떠나 조우는 불발됐다. 하지만 남아있던 정 전 장관의 유세차량이 음악 볼륨을 낮추지 않아 정 대표 측이 “한나라당도 이러지 않을 것”이라 항의하고, 정 전 장관 측은 “민주당 측 사회자가 정 전 장관을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매도해 그렇게 한 것”이라 맞받는 등 신경전이 벌어졌다.

고정애 기자
임장혁 기자, 전주=백일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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