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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잊혀진 대한제국 공사관 되찾읍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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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대한제국 공사관 재구입 운동을 벌이는 평화교회 이동현 목사(왼쪽에서 둘째)와 신도들. 강정현 기자

▶ 1900년 전후의 대한제국 공사관.

▶ 2004년의 대한제국 공사관 모습.

"미국 워싱턴에 있는 대한제국 공사관을 아십니까. 고종이 설치했고 100년 전 을사보호조약 때 일본에 빼앗긴 외교공관입니다. 그 건물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경기도 광주 평화교회의 이동현(52) 담임목사는 요즘 설교나 모임 때마다 이런 얘기를 한다. 이 목사가 공관에 얽힌 사연을 상세히 소개하면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근대사에 그런 기막힌 부분이 있습니까. 처음 듣습니다"하고 깜짝 놀란다. 그러면 그는 "특별한 역사적 가치를 지녔습니다. 공관 건물을 다시 사야 합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런 이 목사가 평화교회의 1000여 교인들과 뜻을 모아 '대한제국 공사관 재구입 운동'에 나섰다. 교회 설립 21주년을 맞은 1일 주일예배 때부터 모금 운동에 들어갔다.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찾기 씨앗 헌금'이라고 적힌 봉투가 활발히 모아졌다. 공관 구입 운동의 의미를 담은 5분짜리 영화도 상영됐다.

"우연한 기회에 책 한 권을 읽게 됐습니다. 그 책에는 지금과 100년 전의 공관 사진이 수록돼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소명의식을 느꼈습니다. 그 건물은 헐리지도, 불타지도 않고 외관이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었습니다. 역사의 기적입니다. 한반도 정세는 한세기 전과 비슷하게 짜여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후손에게 국제관계의 냉혹함을 가르치기 위해 그 건물은 존재하는 겁니다. 힘과 지혜가 없으면 이웃에 멸시당하고 망국의 길로 간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남아있는 겁니다."

이 목사가 말하는 '그 책'은 최근 출간된 '살아숨쉬는 미국역사'(저자 박보균 중앙일보 부국장)다. 이를 통해 공관 건물의 존재가 국내에서 새롭게 조명됐다.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그 건물은 상해 임시정부 청사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귀중한 역사의 보고입니다. 지금까지 재구입하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의 역사의식 빈곤 때문입니다. 그 건물을 역사의 교훈을 가르치는 장으로 리모델링해야 합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이 목사는 기독교사를 비롯해 역사를 폭넓게 공부해왔으며 1984년 연고가 전혀 없었던 광주에서 천막교회를 세워 지금의 평화교회를 일궈냈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 대한제국 공사관=1888년 고종은 박정양을 전권공사로 워싱턴에 상주공사관을 설치했다. 청나라와 일본의 턱없는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을 활용하려는 용미(用美)외교의 결단이었다. 처음엔 임대해 썼으나 3년 뒤 새 건물을 2만5000달러에 구입했다. 5명의 전권공사와 8명의 변리공사가 공관장으로 근무했다. 14년 뒤인 1905년 을사조약으로 조선이 외교권을 잃으면서 공사관은 폐쇄됐다. 1910년 망국(한일합방)과 함께 공사관은 처분됐고, 우리 역사에서 실종됐다. 80년대 일부 역사학자들에 의해 이 건물의 존재 사실이 알려졌지만 우리 정부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03년 워싱턴 교민들이 재구입을 추진했으나 결실을 보지 못했다. 공사관은 빅토리아풍의 3층 적갈색 건물로 현재는 미국인 가정집이다. 백악관에서 북동쪽으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주소는 15 Logan Circle NW Washington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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