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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향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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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여름이 시작되는 토요일 오후입니다.

산으로 창이 나 있는 방에 앉아 책을 펼쳐 놓았지만 자꾸 쏟아지는 졸음에 책 내용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파트 뒤쪽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양입니다.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졸음에 겨운 눈이 크게 떠졌습니다. TV소리인가?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일까?

이번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쏟아집니다. 까르르….

일어서서 내려다 본 놀이터에서는 마침 웅크리고 앉아 있던 여우가 살아나려 합니다.

아이들은 여우를 피해 여기저기 흩어지고 조금 어린 듯한 여우는 열심히 아이들을 잡으러 다닙니다.

잡힐 듯 잡힐 듯. 아이들은 여우를 잔뜩 놀려주고 여우는 이제 화가 났습니다.

여우에게 잡히려나!!

컴퓨터며 TV에서 쏟아지는 자극에 어른들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데 도심 한가운데서 아이들은 우리 어릴 적 옛놀이를 하며 웃고 있습니다.

정말 얼마 만에 들어보는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였던지. 아마 학교에서 전통놀이 뭐 이런 걸 가르쳐 주었나 봅니다. 아님, 저희들이 어른들한테 배웠나? 순간 많은 생각이 확 지나갑니다.

여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순간의 긴장이 지금도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바람을 가르며 뛰어다녔던 일들도. 그러고 보면 우리 아이들은 그런 놀이들을 몰라서 못했었나 봅니다.

그러고는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밖에 몰라." 그랬나 봅니다.

우리 어른들이 너무 바빠 아이들에게 그런 놀이를 가르쳐줄 여유가 없었나 봅니다.

알기만 하면 아이들은 저렇게 잘 노는데요. 토요일 나른한 오후가 확 깹니다. 그러고는 두 아들의 손을 잡고 나도 여우 잡으러 갑니다.

다음주에는 '무궁화 꽃이 피는 것'도 기다려 보아야겠죠.

최월선(40.부산시 남구 문현 현대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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