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위기의 문화시장 살리는 전문가 처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문화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경제위기가 사회 전분야를 강타하고 있는 마당에 여기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위기' 는 '기회' 로도 작용한다.

특히 문화시장이 그렇다.

외형과 과시 위주의 거품을 제거하고 내실을 꾀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21세기가 '문화의 세기' 로 전망되는데다 문화야말로 우리의 경쟁력있는 고유상품으로 자리잡아야 할 때인 만큼 그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문화시장을 살리는 길을 전문가들의 긴급처방으로 들어본다.

*** 문 학

문학은 잡초처럼 악조건에서 더욱 무성한 것이다.

IMF 위기가 문학에는 절호의 소재요 질향상을 위한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불경기 때 양질의 작품이 더 많이 나오고 더 많이 읽힌다.

사회에서 허황된 거품을 빼고 제정신으로 돌아가려면 자기 반성과 사회 성찰이라는 문학의 통로를 거칠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도 불경기 때 오히려 출판이 신장되고 양질의 책들이 많이 읽혔다.

경기 호황 때가 사실 양질의 책들과 문학에는 위기였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조작된 것이요 거품이었다.

서점이 베스트셀러를 발표하면 매스컴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잇달아 광고로 뒷받침 해주며 독자들을 오도한 것이다.

이것이 출판시장을 왜곡, 양서들이 설 자리를 좁게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이제 불황과 국가적 위기를 맞아 이런 거품은 걷어내야 한다.

서점들도 베스트셀러 코너를 치워 더이상 가치 없는 작품들로 독자들을 현혹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독자들은 이제 환상에서 깨어나는 각성제로서 본격 작품을 찾을 것이다.

문인들은 이런 독자의 성향을 십분 파악, 수준 높은 창작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위기는 항상 문학에 좋은 소재를 제공해주고 독자들을 그런 작품으로 끌어들여 스스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맹호 (민음사 대표)

*** 출 판

경제기류가 낮아지면 제일 먼저 문화비 지출을 억제한다.

우후죽순처럼 생긴 1만5천여개의 출판사는 장기화될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많이 정리될 것이다.

어찌보면 사재기, 과대광고 등 출판사들이 질보다는 양으로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급급했던 기획 태도에서 벗어날 기회이기도 하다.

원가상승 때문에 물량으로 승부하던 관행을 버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서인구 자체를 늘리는 출판사, 출판단체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일례로 외국처럼 카페, 레스토랑에서 도서 안내책자를 비치하거나 필자들도 적극적으로 독서 세미나를 개최하는등 독자와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예술.컴퓨터.경제 등 분야를 막론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담는 출판으로 질적인 향상을 도모하는 길만이 살길이다.

더욱 얄팍해진 독자의 호주머니를 열게 하려면 절실히 필요한 내용을 담아야 하기때문이다.

그리고 무계획적.무원칙적으로 계약을 맺고 로얄티를 지불하던 외국번역물에는 신중함을 기하게 될 것이다.

참신한 기획과 맞물려 국내 필자 발굴에도 눈을 돌리지 않을까 한다.

끝으로 출판유통기구가 통폐합 또는 전문화되고 인터넷 서점이 활성화되며 외국자본의 출판사와 출판유통 시장으로의 진입이 구체화되고 가속화 되리라 본다.

윤형두 (범우사 대표)

*** 화랑가

내년 봄이 되면 화랑이나 작가들이 실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한기가 거세게 닥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술시장의 위축은 곧 작품가격의 하락을 가져오며 이는 다시 한국화단의 재편성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초대기획전 위주로 전시행사를 치뤄온 화랑들도 점차 임대 전시장으로 전환 될 것이 예상된다.

또 작품만으로 구성된 전시기획도 다양한 내용을 보여주는 복합전시개념을 도입한 이벤트적 성격이 다수 등장할 것같다.

그런 점에서 순수미술 전시만을 고집하는 화랑과 구분되는 양극화 양상을 보일 것이다.

근래들어 신장세를 보였던 해외작가의 국내전 유치도 당분간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달러의 강세로 인해 한국작가의 해외진출이 다각도로 전개될 것이란 점은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꾸준히 해외전시를 통해 국제지명도를 쌓아온 작가와 내수시장 위주로 성장한 작가군 사이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같은 문화계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화랑이나 작가가 자신들의 특성화된 작업을 보이는 전문화.다변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하겠다.

이호재 (가나화랑 대표)

*** 클래식

IMF시대가 한국공연예술계의 구조조정의 호기 (好機)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목소리도 있다.

과당경쟁으로 턱없이 높아진 외국연주자들의 개런티, 비싼 입장료, 기업협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취약한 재정구조 등 공연예술계의 고질적 악순환을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 보자는 것이다.

국내 아티스트를 키워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연간 3천여회의 크고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그중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외국 유명연주자나 단체의 초청공연이 대부분이다.

이래서는 안된다.

음악회의 입장료도 적정수준으로 조정해야 하고 연간 회원제 활성화를 통해 기본적인 관객과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말하자면 한국인 연주자 중심으로 하되 관객이 찾는 공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KBS교향악단에서는 내년 연주일정을 짜면서 협연자를 한국인 연주자 중심으로 하기로 했다.

이제 우리도 외국 유명 연주자 초청공연을 자제하고 우리 음악의 뿌리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생활에 만족을 찾은 예를 우리는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문화활동이란 원래부터 비싼 대가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강석흥 (KBS교향악단 공연기획부장.한국공연매니저협회 회장)

*** 영 화

경제가 고꾸라진 마당에 수년간 대기업의 잉여이익에 의존하고 있던 영화계의 돈줄은 완전히 끊어질 것이다.

대기업들도 외국영화를 수입해서 한몫 잡으려는 것은 생각조차 안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영화를 어떻게 잘 만들 것인가다.

제작편수가 준다고 해서 영화제작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위축된다고 지레 겁 낼 필요는 없다.

대형 영화관들이 속속 등장해 배급 체계가 자유 경쟁으로 변할 시기이므로 한국영화 스크린쿼터만 제대로 지키면 웬만한 작품도 대우받을 만 할 것이다.

불황일 때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지 모른다는 '역' 희망을 가질수도 있다.

다양한 장르와 기법들이 시도되어야 하겠지만 아무렇게나 불필요한 작품을 만들수 있는 환경은 이미 끝났다.

대기업이나 직배사들이 지배하던 시기가 끝나가므로 그동안 노하우를 쌓아온 기존의 영화업자들이 나설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일선에서 영화의 품질을 결정하게 될 제작자.감독.스탭.배우 등이 같이 공생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합심해야 한다.

법이나 제도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창의적인 개발이 앞서야 할 것이다.

그래야 방송사 등 새로운 영화산업 진출 주체가 등장할 것이다.

정부쪽도 영화업을 벤처사업 육성하듯 취급해야 할 것이다.

이춘연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영화사 '시네2000' 대표)

*** 가 요

연간 4천억원대로 추산되는 한국대중음악시장은 내년 시장규모가 30%이상 축소되는 유례없는 불황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위기는 한국가요에는 역설적으로 기회가 될 수 있다.

환율급등으로 수입.라이선스가 대부분인 팝음반의 가격경쟁력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가요음반의 상대적인 경쟁력은 오히려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때일수록 10대위주의 천편일률적 댄스음악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질높게 공급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록의 경우 세계적 흐름인 모던록, 발라드의 경우 리듬 앤 블루스.재즈등 다른 장르를 혼합한 고급스런 음악을 추구해 팝음악을 대체할 경쟁력을 길러야한다.

댄스음악도 단순한 비트의 유로댄스에서 힙합등 박자감각 돋보이는 흑인음악이 강세인만큼 이를 적극수용해 질을 높여야한다.

가요의 주요 전달매체인 방송도 바뀌어야한다.

라디오는 멘트를 줄이고 성인취향의 음악을 좀더 많이 틀어주어야하며 댄스음악만 천편일률적으로 소개해온 TV쇼도 장르별로 개성화해야한다.

특히 3사 공히 방송중인 순위쇼는 채널별로 차별화해 KBS '가요톱텐' 은 트로트등 외면당해온 장르도 소개하는 종합차트 프로로, MBC와 SBS는 10대와 20대를 겨냥한 프로로 자기 색깔을 찾는게 옳다고본다.

외국아티스트 초청이 사실상 금지된 공연의 경우 정부는 침체에 빠진 국내공연업계를 위해 체육관의 대관료 인하등 지원책을 마련해줘야할 것이다.

이효영 (가요칼럼니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