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란에 우라늄 농축 허용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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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과 이란이 관계 정상화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달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30년 앙숙인 이란에 “새로운 시작”을 제안한 데 이어 핵 협상에서도 이란의 입장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도 이에 화답하듯 교착 상태에 놓여 있는 서방과의 핵 협상 문제를 풀기 위해 새로운 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15일 밝혔다.

뉴욕 타임스(NYT)는 14일 미국이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지 않으면 이란과의 핵 협상도 없다는 기존 입장을 접고, 협상 기간 동안 농축을 허용하는 새 협상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핵 협상에 소극적인 이란을 대화의 장에 나오게 하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란에 대해 핵 프로그램의 광범한 국제 사찰을 허용하도록 촉구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런 방안은 곧 오바마의 승인을 받아 이란에 제시될 예정이다. 이란과의 핵 협상에는 미국·영국·중국·프랑스·러시아·독일 등 서방 6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NYT는 이란 핵 협상에 참여하는 유럽 외교관의 말을 인용해 “핵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이란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상호 신뢰를 쌓기 위해 과도적 조치(협상 기간 중 농축 허용)를 도입하려 한다”고 전했다. 미국 외교관은 “우리의 목표는 유엔 안보리가 여러 차례 결의했던 이란의 우라늄 농축 중단”이라고 강조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최근 “부시 행정부는 탁자를 내리치는 등 이란을 위협한 뒤 딕 체니 부통령이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제국군 사령관) 역할을 하면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중지할 걸로 생각했다”며 “가소로운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새 협상안 마련은 이란의 핵 개발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IAEA에 따르면 이란은 핵폭탄 제조에 필수적인 원심분리기 5500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핵폭탄 두 개를 만들 만한 우라늄을 생산할 능력을 갖췄다. 또 수도 테헤란 공장에서 생산된 차세대 원심분리기를 나탄즈의 핵시설에 공급해 우라늄을 농축하고 있다.

이란도 핵 협상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15일 남부 케르만 지역에서 “우리는 (서방에 제시할) 새로운 핵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다”며 “유엔 상임이사국 및 독일 등 6개국과 가질 예정인 핵 협상 때 새로운 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이란 파르스통신이 전했다. 그는 “이번 제안은 지난해 5월 이란이 제시했던 제안의 새로운 버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새 협상안은 미국 내 보수주의자들과 이스라엘에 새로 들어선 보수 정권의 반발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 보수주의자들은 이란에 우라늄 농축을 허용할 경우 핵 협상에서 이란에 끌려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없애야 한다”는 이란이 핵 무장을 하면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1년 전 부시 행정부 시절 이란의 핵 시설을 폭격하는 방안을 미국에 제시했으나 부시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럼에도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이 군사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고 시사한 적이 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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