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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는 왔지만 ‘봄날’은 아직 … 경기 바닥 논쟁 … 누구 말이 맞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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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달 일자리가 19만5000개나 줄었다. 1999년 3월 이후 최고치다. 실업률은 4%대에 올라서며 실업자가 95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일부 실물지표는 개선 조짐이 뚜렷하다. 아파트 거래는 두 달 연속 증가했고 백화점 매출과 도로의 차량이 늘었다. 치솟던 은행의 대출 연체율도 한풀 꺾였다. 주식시장에선 과열 논란까지 일고 있다. 아직 “경제의 봄은 멀었다”는 주장이 우세하지만 “이제 바닥이 아니냐”는 의견도 한쪽에서 나오고 있다.


■ 이명박 대통령 “최근 일부 경제지표들이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 윤증현 재정부 장관 “지금 경제 상황은 긍정적인 요인과 부정적인 요인이 혼재된 국면”

■ 삼성경제연구소 “한국 경제의 회복 논의는 시기상조”

■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국내 경기는 당분간 어려움 지속될 것”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 벤 버냉키 FRB 의장 “미국 경제의 침체 속도가 늦춰지고 있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 앤 크루거 전 IMF 부총재 “봄의 신호탄은 있지만 봄 서리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

■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실질적인 회복의 신호는 없다”

한국

이래서 낙관 원화가치 안정되고 백화점 매출 늘어나
이래서 신중 실업률 4%로  세계 경제 전망도 불투명

기다림에 지쳐 착시현상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정말 봄기운이 올라오는 것인가. 최근 일부 경제지표가 호전 기미를 보이면서 한국 경제가 추락을 멈췄다는 경기 바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회복이 더딜 수는 있지만 최소한 급락은 멈췄다는 것이다. 특히 경기에 선행하는 주식시장의 반등세가 가파르다.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일부 주요 경제지표들이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국제금융포럼에 보낸 축사 에서 “그동안 한국 정부가 펼쳐온 선제적이고 과감한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여전히 각종 지표가 암울하기 때문이다. 우선 고용시장은 한겨울이다. 통계청은 3월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19만5000명 줄었다고 15일 밝혔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 3월 이래 가장 많이 감소한 것이다. 3월 실업률도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0.6%포인트 높아져 4%가 됐다. 실업자는 14만2000명 늘면서 95만2000명에 달했다.

특히 졸업생들이 사회에 쏟아져 나오면서 청년 실업률이 8.8%에 달해 2005년 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취직을 포기해 경제활동 인구에도 잡히지 않는 구직 단념자와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쉬는 사람, 취업 준비생, 현재 주당 18시간 미만 일하고 있지만 더 일하고 싶은 사람까지 합친 사실상 실업자는 343만8000명에 이른다.

통계청 정인숙 고용통계팀장은 “취업자 수는 계절적 요인 때문에 2월까지 줄다가 3월부터 회복되는 게 보통”이라며 “하지만 올해는 계절 요인을 상쇄하는 경제적 요인이 작용해 취업자가 계속 줄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이 이처럼 줄면 소비가 따라 줄어 경기 회복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

나라 밖 사정이 여전히 불투명한 것도 걸림돌이다. 올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달 -0.5~-1%로 낮췄던 국제통화기금(IMF)은 다음 주에 한 차례 더 낮출 것으로 보인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세계 경제가 죽을 쑤면 덩달아 맥을 못 추게 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날 ‘한국 경제 조기 회복론 점검’이란 보고서를 통해 “한국 경제의 회복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경기선행지수나 심리지표 등을 볼 때 경기 저점은 올 6월 께 도달하겠지만 하반기에도 회복 속도는 미약한 만큼 올해 안에 회복을 체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보면 약간씩 봄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이후 한 달만 빼고 계속 감소하던 아파트 거래건수가 2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달에는 3만7398건으로 지난해 7월 수준을 회복했다. 시중에 자금이 많이 풀리고, 부동산 규제가 상당 부분 완화된 때문이다.

길거리에 차량도 늘었다. 도로공사는 지난달 전국 고속도로 통행량이 1억194만 대로 전년 동기 대비 0.53% 늘었다고 밝혔다. 2월에 2.42% 감소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백화점도 3월 매출이 늘었다. 롯데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3월보다 8.3% 늘었고, 신세계백화점은 4.4% 증가했다. 산업용 전력 공급은 2월에 5.5%나 줄었으나 지난달에는 -2.8%로 감소 폭이 둔화됐다. 특히 조선(12.8%)과 반도체(1.6%)·철강(0.9%) 등 주력 업종의 전력 공급은 5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금융시장 안정도 바닥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한때 달러당 1600원에 접근하던 원화 가치는 최근 1300원대에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국내 은행들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3월 말 현재 1.46%로 한 달 전 1.67%보다 낮아졌다. 특히 주식시장은 올 들어 코스닥지수가 51%나 올라 과열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최현철 기자

미국

오바마 · 버냉키 낙관론 속
“반짝 신호일 뿐” 경계 많아

미국 경기가 바닥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베어마켓 랠리(약세장에서 잠시 주가가 반등하는 것)’로 그칠 것이라던 뉴욕증시가 예상 외로 선전하는 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 고위 관계자들이 공식 석상에서 잇따라 낙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실질적인 회복의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는 경계론도 만만치 않다. 지금의 반짝 신호에 현혹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14일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타운대 연설에서 “아직 (미국 경제가) 숲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부·건설사들의 고용 움직임과 신용시장의 회복 조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어 “경기부양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낙관론을 거들었다. 같은 날 모어하우스대 강연에서 그는 “급격하게 나빠졌던 미국 경제의 위축 속도가 늦춰지고 있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판매·주택건설·자동차판매량 등을 볼 때 분명히 미국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UC버클리대의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는 다른 의견을 내놨다. 그는 지난 9개월간의 각종 지표를 살펴볼 때 지금의 경기침체가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산업 생산량과 무역량이 줄어드는 등 현 상황은 단지 침체가 아닌 ‘불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공황 때 그랬듯 앞으로 적어도 4년간은 경제 회복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13일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뉴욕 외신기자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경기침체의 속도가 완만해지고 있다는 신호들이 있지만 실질적인 ‘턴 어라운드(Turn Around·회복)’의 기미는 없다”고 못 박았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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