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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대응한 공동체주의론 부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공익이 후퇴하고 개인주의가 증대하는 세기말 상황에서 사회 공동체는 어떤 성격을 띠며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최근 학계 밑바닥에선 '공동체주의' 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관련 저서 및 논문들이 학문의 경계를 넘어 발표되고 있다.

공동체주의란 '공동선 (善) 의 정치' 로 개인의 자유도 결국 사회적 맥락을 벗어날 수 없으며 사회적 공동체의 바탕 위에서 가능하다는 주장. 공동체주의의 대두는 개인주의 만연등 냉전 이후 새롭게 등장하는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의 지속적.안정적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이론적 대응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에의 대응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평등과 같은 공동체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인의 자유와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했던 전통적 자유주의와 달리 개인간.자본간 경쟁의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심각한 무질서'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붕괴로 플라톤 이후 맑스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서구 전통으로 이어온 공동체 주장이 위기를 맞게 됐다.

국내학계에서도 이를 대신해 '절차적 공정성' 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이론들이 지배해왔던 게 사실. 철학에서는 황경식 교수 (서울대.철학) 의 '개방사회의 사회윤리' (철학과현실사刊) 를 비롯해 존 롤즈등 미국의 자유주의 철학자를 소개하는 책들이 쏟아졌으며 경제학에서는 하이에크등 자유주의 경제이론서들이 봇물처럼 선보였다.

반면 공동체적 가치를 옹호하는 이론서는 94년 출간돼 한국정치학회의 학술상을 받은 박호성 교수 (서강대.정치학) 의 '평등론' (창작과비평사) 을 꼽을 수 있는 정도. 그러나 최근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공동체주의론이 부쩍 늘고 있다.

'사회비평' (나남) 이 작년 겨울호에 '자유주의 꿈과 짐' 에서 자유주의의 내적인 딜레머를 조명한 이후 최근에는 김균 (고려대.경제학) 박순성 (동국대.경제학) 교수등 경제학자들이 공동집필한 '자유주의의 비판' (풀빛)에서 신자유주의를 본격 비판하고 나섰다.

또 미국 공동체주의론의 대표적 인물인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의 '덕의 상실' (문예출판사) 의 번역.출간도 이같은 관심의 반영이랄 수 있다.

이 책은 자유주의자들의 형이상학과 그것이 가져올 니체적인 무정부상태를 비판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공동체 정치를 권유한다.

더욱이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적 공동체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점. 지난 가을 사회와철학연구회 (회장 이삼열)가 집담회를 개최한 것과 철학연구회 (회장 엄정식)가 '윤리질서의 융합' (철학과현실사) 을 출간한 것을 비롯, 사회학.정치학등에서도 이같은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사회에 내재된 전통적 가치인 '도덕' 과 가족중심적 질서에 기초한 '공동체' , 여기에 근대적 가치인 '복지' 를 효율적으로 결합하고자 하는 송호근 교수 (서울대.사회학) 의 시도등이 특히 눈길을 끈다.

아직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관심에 비해 성과는 미흡한 편.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야기한 한국 사회의 위기가 심각해질수록 학계에서는 대안공동체 마련을 위한 노력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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