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주유기 '4자리수 시대'…기름 98년 리터당 1천원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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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컴퓨터 사용자들은 2000년이 시작되는 날을 떠올리면 난감한 느낌이 앞선다.

대부분 컴퓨터의 연도표시가 두자리인 00으로 표시돼 일어날 수 있는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혼란이 내년 주유소에서도 벌어질 전망이다.

ℓ당 기름값이 1천원대로 오를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내년 1월 ℓ당 기름값이 만약 1천2백원으로 인상된다고 치자. 전국의 모든 주유기들은 ℓ당 가격표시가 백단위 (최고 9백99원) 로 돼 있어 지금의 체계로는 단가가 2백원으로 표시될 수밖에 없다.

이로인해 기름값 계산에 혼란이 생기고 환산표 등을 쓴다 치더라도 소비자들과 주유소 사이에 승강이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최근 주유기 제작업체들은 이와같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주유기의 단가 (單價) 표시장치를 네자리로 교체하는 때아닌 특수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정유업체들도 최근 이에대한 대책회의를 열고 연말까지 주유기의 단가표시 장치를 네자리로 바꾸는 일을 서두르고 있다.

전국의 주유소는 9천6백여개. 이들 주유소가 보유하고 있는 주유기는 9만~10만대로 추정되고 있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때 직영주유소를 중심으로 주유기 자체를 바꾸는 것을 검토했으나 경영사정이 좋지않아 단가표시 장치만을 교체키로 결정했다" 고 말했다.

새 주유기로 바꿀 경우 대당 최소한 3백50만원이 들고 단가표시 장치만 교체해도 대당 20만~30만원이 소요된다.

교체작업은 단가를 표시하는 다이얼 방식의 화면장치를 완전교체하고 주유기에 내장된 컴퓨터 칩과 천단위를 읽어낼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갈아주는 것. 일부 주유기 생산업체들은 신속한 교체작업을 위해 96년 이후 제작.공급된 신형주유기의 경우 기존의 소수점 표시를 지워 네자리로 활용하는 작업을 고려중이다.

LG산전.동아계량기 등 주유기 생산업체들은 이같은 사정으로 인한 주유기 특수와 관련해 "가급적 주유소에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가격을 책정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와 주유소들은 최근의 극심한 경기불황에다 이로인한 추가비용이 더 발생해 허리띠를 더욱 졸라 매야 할 형편이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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