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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기획 ‘2009 가난에 갇힌 아이들’을 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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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2009 가난에 갇힌 아이들’ 기획기사가 나간 6·8·10일 본지 편집국엔 전화와 e-메일을 통해 아이들을 돕겠다는 독자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특히 모텔 ‘달방’에 사는 혜정이(10·가명)의 딱한 사연이 독자들의 마음을 많이 움직였다.

한 독자는 “나도 빠듯하게 살지만 혹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해 e-메일을 보낸다”며 “책이든 먹을 것이든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나 같은 사람에게 아이의 연락처를 직접 가르쳐 주지는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딸 키우는 입장에서 안 좋은 사람들이 아이를 어찌할까 너무나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한 미혼 여성도 “물질적 도움은 안 되겠지만 내가 (혜정이가 사는) 부산에 사니 공부도 가르쳐 주고 말벗을 해 주며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포항에서 중소기업을 한다는 한 기업인은 “우리 딸 셋이 (혜정이를) 친동생처럼 돌볼 수 있을 것 같다”며 “도울 수 있게 꼭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안혜리 기자

이렇게 바꾸자

아동수당제 시행 검토할 때
변웅전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아동은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중요한 사회구성원이다. 아동이 건강하지 않고는 건강한 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빈곤 가정의 아동은 가족의 관심을 못 받고,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사회의 관심도 못 받는 실정이다.

빈곤 아동은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또래에 비해 더 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신체적·사회문화적·심리적 소외감을 경험한다. 또한 부모의 취업으로 돌봐 줄 양육자가 없는 저소득층 아동들은 사회적으로 방치된 상태에서 성장하게 돼 자신감을 잃게 되고 인간 관계에 어려움을 느껴 비행 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를 보면 외환위기 당시 4년보다 외환위기 졸업 이후 2003~2006년 4년간 상대 아동 빈곤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손 가구의 아동 빈곤율이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한 부모 가구(편부·편모 가구), 맞벌이 가구 순이었다. 특히 조손 가구 절반 이상이 빈곤 상태에 처해 있어 지원이 절실한 실정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과 아동을 지원하기 위해 드림스타트 사업(빈곤 아동 보건복지교육문화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전국 32개 사업 지역이 확대될 수 있도록 향후 정부 예산을 늘려야 할 것이다. 또 아동수당제도 도입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본다. 아동수당제란 양육비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으로 세계적으로 88개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보다 활발한 논의와 토론을 통해 아동수당제도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

아이들 환경 고려한 맞춤 서비스를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 세상에 ‘빈곤한 아동’은 없다. ‘빈곤한 환경’에 태어난 아동들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 아이들이 건전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가정이 책임질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며 빈곤 아동들의 현실을 애써 외면해 왔다. 하지만 ‘2009 가난에 갇힌 아이들’ 기획기사는 더 이상 가정에만 책임을 미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가정에서의 방치, 학교에서의 무관심, 지역사회로부터의 소외는 인터넷 중독이나 탈선, 비행, 열악한 영양상태 등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동청소년정책은 단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대증요법 수준에 머물러 왔다.

이제 빈곤한 환경에 있는 아동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책임을 사회가 져야 한다. 빈곤한 가정에 대해 건강·보육·복지 서비스를 종합적이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이 가동돼야 한다. 부모가 아동을 적절히 양육할 능력이나 의도가 없을 때는 국가가 대신 양육을 책임질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강화돼야 한다. 아동의 이익을 최선으로 한다는 원칙 하에 필요할 때에는 부모의 친권을 제한 혹은 박탈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부모가 생업 등의 이유로 아동을 적절히 돌볼 수 없는 시간은 보육서비스와 방과 후 돌봄 서비스가 메워주어야 한다. ‘나 홀로 아동’의 규모가 수십만 명으로 추산되는 현실을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떤 환경에 태어났는지에 상관없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잘 길러내느냐에 달려 있다.

방과 후 학교서 놀 수 있게 하자
이경희 서울 영림초등학교 교장

어린 학생들이 가족·친지로부터 필요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초등학교에서 그들을 보살피고 돌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의 아픔을 제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님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장벽이 너무나 많다. 대부분 경제적 지원이 요구되고 학부모와의 마찰 등 문제가 커졌을 경우 학교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우리 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 한 분이 집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학생을 발견하고는 궁여지책으로 매일 퇴근 때까지 그 학생을 보살폈다. 하지만 그 학생은 끝내 가출했다. 이 사건 후 피해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자신을 보호해 준다는 선생님의 뜻에 따라 교실에 혼자 남아 숙제하고 책 읽는 게 이 아이에겐 너무나 지루했을 것이다. 친구가 그리운 시간에 새장에 갇힌 새처럼 그저 보호만 받았을 뿐이다.

학교에서 이런 학생을 위한 별도의 방과 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혼자 외톨이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함께 교육을 받으며 서서히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무료로 공놀이·바둑·컴퓨터를 마음껏 하면서 학교에서 오후 8시까지 돌봐 준다면 어떨까. 학교 도서실을 이용해 아동을 돌볼 수 있지 않을까.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것만이 우리 교육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받는 아동을 건실한 민주시민으로 키워 내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참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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