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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기업 ‘성장통’ … 지금 살아남는 자 미래를 얻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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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 OCI(동양제철화학)는 연말로 예정했던 폴리실리콘 3공장의 완공을 내년으로 미뤘다. 태양전지 시장이 위축되면서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의 공급이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폴리실리콘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물량이 달려 한때 ㎏당 400달러를 넘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값이 폭락해 1분기엔 ㎏당 120달러가 됐다.

#2. 증권사들은 반도체 장비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의 실적 전망치를 잇따라 낮추고 있다. 지난해 진출한 박막형 태양전지 장비 사업의 성장이 예상보다 더딘 탓이다. 올 들어서는 박막형 태양전지 장비 수주가 뚝 끊겼다. 3월 중국에 납품키로 했던 장비도 바이어의 요청으로 공급이 7월로 연기됐다.

‘황금알 산업’으로 불리던 태양광 산업에 먹구름이 끼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 조달이 쉽지 않고, 국제 유가 하락으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낮아진 때문이다. 장밋빛 전망만 보고 뛰어들었던 기업은 제품 가격 하락에 울상이다. 한때 태양광 사업을 한다는 소식만으로도 주가가 급등했던 왓컴(WATT COM·신재생에너지 기업) 기업들이 과거 닷컴(DOT COM·인터넷기업)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계적 투자 전문지 미국의 배런스는 얼마 전 “태양광 솔라 패널이 만성적인 공급 과잉에 시달리는 메모리 반도체 신세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 태양광 발전의 70%를 차지하는 스페인과 독일 정부는 태양광 발전 설비에 대한 보조금을 올해부터 크게 줄였다. 스페인의 올해 투자 규모는 지난해(2.3기가와트)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은행이 어려워지면서 태양광 발전소에 대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투자가 줄면서 부품 수요도 감소했다. 신영증권 이승우 IT팀장은 “올해 세계 태양광 발전의 신규 용량은 지난해(5.6기가와트)보다 줄어든 5.1기가와트에 그칠 것”이라며 “태양전지와 모듈의 수요가 20% 이상 줄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태양광 시장이 매년 40~50%씩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이미 생산 규모를 늘려놨다. 공급은 늘었는데 수요가 줄어드니 제품 값은 급락할 수밖에 없다. 기초 소재인 폴리실리콘뿐 아니라 태양전지와 모듈 가격도 6개월 만에 30%가량 하락했다.

생존을 위한 업체들의 경쟁은 치열해졌다. 태양광 모듈 제작사인 에스에너지 한성용 기획팀장은 “수백 개로 늘어난 중국의 모듈 제작 업체는 지난해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고, 최근엔 생존을 위해 20% 이상 싸게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부침이 심한 것은 태양광 산업이 독자적 경제성보다는 정책에 기대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기술 변화도 심해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기존 제품보다 폴리실리콘을 덜 쓰는 박막형 태양전지는 차세대 태양전지로 불리며 승승장구해 왔다. 하지만 폴리실리콘 가격 급락은 이들 업체에까지 직격탄을 날렸다. 폴리실리콘을 덜 쓰는 게 별다른 경쟁력이 되진 않기 때문이다. 업계는 지금의 위기를 언젠가는 겪어야 할 ‘성장통’으로 본다. 이를 두고 LG경제연구원 양성진 선임연구원은 “핵심 기술 없는 기업엔 위기지만 경쟁력 있는 기업은 더 크게 성장하는 계기”라고 말했다.

더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태양전지업체 미리넷솔라의 이상철 회장은 “태양전지의 가격 하락으로 화석 연료와의 경제성 격차가 줄고 있다”며 “오히려 태양광 산업의 수요를 늘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태양광의 발전 단가가 화석 연료보다 세 배 이상 비싼 게 성장의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태양광모듈 값이 빨리 떨어질수록 햇빛이 석유를 대체하는 시기도 앞당겨진다. 다만 투자자들은 앞으로 2~3년간 구조조정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기업을 가려 투자해야 한다. 기업에 따라서는 닷컴 버블 때 황제주로 각광받다가 몰락한 새롬기술이 될 수도, 거품 붕괴 후 인터넷 시장을 장악한 NHN이 될 수도 있다. 우리투자증권 박태준 연구원은 “태양광에서도 반도체 분야의 삼성전자 같은 선도기업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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