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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5년 뒤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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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가까운 미래의 통일 한국을 그린 장편소설 『국가의 사생활』을 펴낸 시인 겸 소설가 이응준씨는 14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뜻에서 영화처럼 쓰려 고심했다”고 말했다. [민음사 제공]

 어느 날 갑자기 남한과 북한이 통일된다.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흡수 통일한 것이다. 그로부터 5년 후.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39)씨의 새 장편소설 『국가의 사생활』(민음사)은 바로 그 ‘5년 후’의 통일 한국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 시간 배경은 2016년, 계절은 이맘때인 꽃잎 날리는 4월이다. 어떤 모습이 상상되시는지. 이씨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우선 통일 정부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13년까지 복무한 ‘전쟁기계’인 인민군 120만 명을 서둘러 해산시켰는데 이게 대형사고로 판명된다. 동포애는 뒷전, 이윤 추구가 최우선인 남한 자본가의 눈에 무능한 노동자들일 뿐인 인민군들은 토비나 마적, 도시 빈민 또는 조폭으로 전락한다. 엄청난 양의 재래식 총기로 무장한 채. 정부는 북한 인민의 촘촘한 주민등록화에도 실패한다. 적 없는 ‘대포 인간’이 양산된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엄청난 통일 비용을 감당 못해 전망 없는 3등 국가로 망해가는 중이다.

이쯤 되면 소설 제목의 의미는 분명해진다. 국가란 속속들이 민의에 바탕한 것이든 허울뿐인 이데올로기든, 한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 체계의 실현을 위해 시간과 자원의 사용을 기획하는 전체일 것이다. 소설은 국가의 공적인 이면에 감춰진 사생활, 남한 주민과 북한 인민들의 실제 삶에 눈돌린다. 누구도 당위성을 의심치 않는 통일이 실제 실현됐을 때 한국의 모습을 이씨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경고한다. 북한 최고위층의 딸이 이색 쾌락을 추구하는 남한 실력자를 위한 창녀로 타락하고, 인민군 최정예 전사가 한낱 깡패로 전락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그럴 때 조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주장은 알맹이 없는 수사일 뿐이라고.

이씨는 우리 소설사에 전례가 없을 만큼 ‘섹시한’ 이야기를 ‘필름 느와르(범죄와 폭력을 다룬 검은 영화)’처럼 풀어나간다. 이른바 ‘10%’를 능가하는 1급 룸살롱 ‘은좌’를 채우는 북한 미녀들, ‘은좌’를 운영하는 인민군 출신 조폭 무리 ‘대동강’ 단원들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때문에 폭력이 난무하는 초반부, 소설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시인 특유의 함축적인 문장들도 읽는 맛을 더한다. 가령 이씨는 한 순간 “순진한 자는 타인도 자신처럼 행동할 거라 착각하는 부류, 순수한 자는 타인이 자신처럼 행동해야 옳다고 화내는 부류”라고 정의한다.

팁 하나. 빠르게 읽히던 소설이 어디서부턴가 버거워진다면 그 때부터는 “이 소설 영화같다”는 속마음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이씨는 ‘본격문학’ 작가다. 그는 14일 기자간담회에서 “강하고 무거운 주제 전달을 위해 느와르를 깔고, 블랙코미디·멜로·스릴러에 약간의 액션과 추리 코드, 우화 등의 요소를 선택한 뒤 혼합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소설은 말쑥한 느와르 영화는 아닌 것이다.

이씨는 말한다. “10년 군 생활한 북한 사람이 옆집 이웃인 상황을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소설은 그에 대한 이씨의 가상 대답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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