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에서 탄광촌까지 ‘희망’을 배달하는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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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3일 ‘서울바로크합주단’은 오후 3시에 막이 오르는 특이한 음악회를 열었다. 오후 5시면 취침 시간이 시작되는 계획표에 맞춰 사는 독특한 청중 때문이다. 일반 공연보다 5시간 당겨져 열린 탓에 연주자들은 이른 아침 서울을 출발했다. 연주회가 마련된 곳은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小鹿島). 국립소록도병원의 우촌복지관에 한센병 환자 200여명과 병원 근무자들이 모였다. 무대는 작고, 음향은 거친 곳이었다.

전남 고흥군 소록도 국립소록도병원의 우촌복지관에서 열린 ‘서울바로크합주단’ 공연은 소록도에서 최초로 열린 클래식 음악회란 기록을 세웠다. [서울바로크합주단 제공]


◆유럽에서 소록도로=단원 50여명으로 꾸려진 ‘서울바로크합주단’이 내년에 창단 45돌을 맞는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현악 실내악 단체다. 여기에 해외 연주 100회도 다가왔다. 현재까지 외국의 여름 페스티벌 등에서 연주한 횟수가 89회. 올 여름 13번의 유럽 연주를 마치면 100번을 채우게 된다. 서양에서 들어온 실내악을 본바닥에 수출하는 단체인 셈이다. 이런 큰 결실을 앞둔 합주단이 중점을 두고 있는 계획은 다소 엉뚱하다. ‘음악회를 접할 기회가 가장 적은 지역에 찾아가는 것’. 소록도 공연은 1년에 4회 이상으로 잡힌 소외 지역 콘서트, ‘희망 콘서트’의 첫 공연이었다.

◆연주료 없이 찾아가 연주=“처음에는 객석이 너무 조용했어요. 소록도에서 최초로 열리는 클래식 공연이라는데 말이죠. 연주하는 저희가 초조할 지경이었죠.” 김민(66·바이올린) 합주단 악장의 기억이다. 하지만 음악이 흐르고 느낌이 통하자 분위기는 곧 뜨거워졌다. 앙코르 곡으로 준비한 찬송가는 한센병 환자들이 읊조리듯 따라불렀다고 한다.

이날 공연은 연주료를 받지 않는 것은 물론 여비 일체를 합주단이 부담했다. 단원 회의를 거쳐 결정했고, 앞으로 갈 곳도 다 무료다. 서울 혜화동 동성고등학교에서 다문화 가정을 위해 연주회를 여는 데 이어 탄광촌·교도소를 찾아가고, 백령도·연평도 등 섬을 찾는 계획도 있다.

김민 악장은 해병대 출신이다. 백령도를 콘서트 여정에 넣은 것도 그 시절 추억 때문이다. 김 악장은 “클래식 음악이 고고한 성에 갇혀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임무”라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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