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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만 아깝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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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음식점에 예약을 하는데, 승용차로는 건물 앞까지 올 수 없으니 콘도미니엄 앞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하라고 했다. 그렇게 도착한 음식점 건물은 아주 멋있었다.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아서 제법 시끄럽고 음식도 조금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아름다운 건물과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해 그런 아쉬움은 모두 사라졌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의 건물에 앉아 성산 일출봉을 바라보며 먹는 음식이 어찌 맛있지 않을 수 있을까.

배를 채운 후 미술관으로 향했다. 세 개의 설치미술 작품도 좋았지만, 역시 그 미술관의 주인공은 건물 자체였다. 주변 경관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걸작이었다. 제주에 간다는 사람이 있으면 꼭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게 있었다. 음식점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고, 건물 바깥 바닷가에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미술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미술관은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게 되어 있었는데, 신발장에는 많은 슬리퍼 외에 어떤 신발도 없었다. 내가 들어갈 때도 그랬고 나올 때도 그랬다.

사람이 없어서 나는 오히려 좋았지만, 이 멋진 공간에 저 많은 관광객이 왜 들어오지 않는지 궁금했다. 아직 덜 알려져서 그러려니 하면서 미술관을 나오는 순간, 의문이 풀렸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에 맞춰 여러 명의 일행이 일제히 입구로 향하던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는 이랬다. “입장료 있단다. 그냥 가자.”

그 입장료는 4000원이다. 투숙객이나 음식점 이용객은 50% 할인해서 2000원이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달려가서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충분히 입장료 낼 가치가 있다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머뭇거리는 짧은 순간에도 무려 세 팀이나 같은 이유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사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일반인들의 해외여행 후기에 가장 흔히 등장하는 구절도 “입장료가 비싸서 건물 앞에서 사진만 찍었다”이지 않던가. 항공료와 숙박비와 밥값을 내고 소중한 시간까지 투자하는 이유가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함은 아닐 텐데 말이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선 입장료가 아까울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물가를 생각하면 미술관 입장료는 그리 큰 돈이 아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사람들이, 왜 유독 미술관이나 박물관 입장료에는 그렇게 인색한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미술관 입장료는 영화 한 편 보는 비용보다 적은데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14개 국립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입장료는 무료다. 지난해 5월부터 연말까지 시범 실시했던 정책이 올해 말까지 1년 연장된 결과다. 입장료 무료화로 국립박물관의 관람객이 30% 이상 늘었다면서 정부는 높이 평가하는 모양인데, 길게 보면 이건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다. 실제로 요즘 사설 미술관들은 관람객 수가 크게 줄어들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입장료를 너무 아까워하다가는 입장료 내고 들어갈 미술관들이 아예 없어질지도 모른다.

박재영‘청년의사’ 편집주간·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