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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시장 거래 실종…정부대책 알맹이없자 "금융대란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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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금융시장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한 정부의 대책이 연이어 발표됐지만 알맹이가 없어 이러다간 '금융대란' 이 현실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높아가고 있다.

8일 임창열 (林昌烈)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이 은행장들을 만나 기업과 종금사에 대한 자금지원을 당부했고, 이경식 (李經植) 한국은행총재도 청와대에서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보고했지만 이날 자금시장은 '마비' 가 아니라 아예 거래가 사라진 '실종' 상태로 치달으면서 기업과 금융기관의 무차별 부도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林부총리는 이날 은행회관에서 35개 은행장, 예금보험공사 사장 및 성업공사 사장 등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를 2년내에 유지하면 되므로 기업과 종금사에 대한 원활한 자금지원을 당부했다.

또 李총재도 최근 9개 종합금융회사의 업무정지조치로 3조4천억원 규모의 기업예금이 이들 종금사에 묶인 것과 관련해 해당기업에 대해서는 다른 종금사나 은행들이 이 예금을 담보로 대출해주도록 유도한다는 내용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또 한은은 다른 종금사나 은행이 이에 따른 유동성 부족사태를 겪게 될 경우 유동성 조절용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날 자금시장은 이같은 정부대책 발표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주보다 한층 더 심한 신용경색 현상을 나타내면서 완전히 꽁꽁 얼어붙었다.

하루짜리 콜금리는 거래가 거의 실종된 상태에서 법정 최고금리인 연 25%를 기록했으며, 중기금리인 91일짜리 기업어음 (CP) 역시 법정최고 금리인 연25%보다 높은 수준에서 마감됐다.

더 이상 오르려야 오를 수도 없는 천장이다.

3년만기 회사채 수익률도 연21%에 '팔자' 주문이 나오는등 극도의 혼미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 대형종금사의 한 관계자는 "은행권이 담합이라도 한 듯 일제히 돈을 풀지 않고 있다" 며 "화폐교환시대가 아니라 자급자족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 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섣불리 자금을 지원했다가 돈 준 은행만 뒤집어쓸 가능성이 있다" 며 "정부의 서면지급 보증 없이 무작정 지원할 수 없다" 고 말했다.

더욱이 지난주말 은행권의 콜자금 1주일 만기연장으로 일부 종금사들이 부도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지만 예금인출이 진정되지 않고 있는데다, 이번주에는 증권사들의 콜자금 만기 도래도 잇따르고 있어 새로운 위기국면으로 돌입하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시중은행들이 이들 증권사에 추가 자금지원을 중단할 경우 일부 중소형 증권사는 고려증권과 유사한 운명에 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재경원은 전날 신임인사 이후 '업무보고' 로 이날 하루를 허비, 위기관리능력이 극도로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한편 달러환율도 기업체들의 결제수요가 일면서 상승제한 폭까지 오르면서 연중 최고치인 1천3백42원40전을 기록, 자금시장 불안을 가속화했다.

S종금사 관계자는 "IMF도 한국의 지급결제시스템 붕괴를 원했던 것은 아닐 것" 이라며 "재정 동원을 포함한 정부의 구체적인 조치가 시급하다" 고 말했다.

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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