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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 사는 혜정이 사연 가슴 아파 … 당장 조치하라 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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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돌볼 사람이 없어 방치되는 아이들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이 추진된다. 보건복지가족부 전재희 장관은 12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아동·청소년에 대한 ‘돌봄 서비스’를 전면적으로 확대하겠다”며 “전국 주민센터에 도우미를 고용해 방과 후에 방치되는 아이들이 없게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장관은 또 “자녀를 돌볼 여력이 없는 한 부모(편부·편모)나 미혼모 가정 등 취약계층 자녀를 위한 획기적인 정책을 만드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본지 6, 8, 10일자에 보도된 ‘2009 가난에 갇힌 아이들’ 시리즈와 관련해 대책을 만들었다.

모텔에서 혼자 사는 열 살짜리 소녀 혜정이(가명)와 담배를 끊지 못하는 창호(12·가명) 사연이 본지에 소개된 8일, 보건복지가족부 전재희(사진) 장관은 담당 부서 과장들에게 “당장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공무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본지 취재팀에서 신상 명세를 받아 바로 확인에 들어갔고, 당장 가능한 조치를 내놨다. 뱃일 나간 혜정이 아버지를 급히 찾았고, 다음 달 혜정이를 아동복지시설로 보내기로 했다. 창호는 인근 한의원의 도움을 받아 금연침 시술을 받는다. 전 장관은 새로운 대책도 내놨다. 혜정이 같은 아이들을 위해 조만간 방과후 학교를 확대해 방치되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경제위기로 아이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맞다. 최근 경제난이 부모 이혼 등 가족 해체로 이어지면서 ‘나홀로 아이들’이 늘고 있다. 아이들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가족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인터넷 게임에 몰입하고, 모텔에서 혼자 살고, 끼니를 혼자 해결하며, 폭식·결식에 시달린다니…. ‘2009 가난에 갇힌 아이들’ 기획 기사를 읽으며 자식을 둔 부모로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마음이 급했다. 우선 이 아이들만이라도 도울 수 있게 빨리 대책을 만들라고 실무자들에게 지시했다.”

-혜정이·창호 같은 애들이 엄청나게 많다.

“가족의 역할이 크다. 그러나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가족에게만 책임지울 수는 없다. 정부 힘만으로도 안 된다. 학교와 지역공동체가 모두 나서야 한다. 내 아이 키우기도 벅차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조금 있는 부모라면 내 자식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어려운 애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학교 선생님들이 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도시락 못 싸오고 등록금 못 내는 아이가 있으면 선생님이 도시락 두 개 싸오고 집에 일일이 찾아다니며 도왔다. 요즘 선생님들이 격무에 시달리는 건 알지만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을 선생님들이 모른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부의 역할은 뭔가.

“실태 조사 후 어려운 아이들에게 맞는 프로그램과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다. 예산이 많이 필요한 정책이라 아직 발표를 못 했지만 아이 돌볼 여력이 없는 편부·편모나 미혼모 가정 등 취약계층 자녀를 위한 정책을 만드는 중이다. 또 아동·청소년에 대한 ‘돌봄 서비스’를 전면적으로 확대하고자 한다. 각 지역 주민센터에 도우미를 고용해 방과후에 방치되는 아이들이 없게 관리하려 한다. 엄마·아빠가 힘겨운 일상에 매여 자기 아이를 충분히 돌보지 못하더라도 함께 밥 먹고 공부하며 뛰놀 공간과 친구와 선생님이 있으면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다.”

-그동안 복지부의 아동·청소년 정책은 물적 지원에만 머물러 왔는데.

“맞다. 그러나 이제 대상을 중산층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교육과 건강, 다양한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인적 투자정책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미래 성장 동력인 아동·청소년에게 교육·복지·보육·의료 등 전 방위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미국은 1962년 ‘생애초기아동에 대한 교육(Perry Preschool Project)’을 시작했다. 아동에게 투자한 결과 1달러가 17.1달러의 사회적 효과 창출로 이어졌다고 한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투자는 곧 국가의 미래에 대한 선제적 투자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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