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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적시는 '몽환적 사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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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통상적인 음악의 코드를 뛰어넘은 창조적인 그룹 MOT. 지이(左)는 기타와 일렉트로닉, 이언은 작곡.보컬.믹싱 등을 맡고 있다. [임현동 기자]

큰 나무가 잇따라 쓰러지면 숲은 위기에 빠진 듯 보인다. 그러나 거목의 그늘에 가려 햇빛을 보지 못했던 키 작은 나무와 앉은뱅이 식물들에게는 위기가 기회가 된다. 한국 대중음악의 숲도 요즘 그런 듯하다.

100만장 시대에도 1만장을 넘기기 힘들었던 비주류 음악인에겐 대박이 나봐야 10만장인 요즘의 불황이 특별히 더 힘들 것도 없다. 오히려 대중의 눈에 더 쉽게 띄는 장점도 있다. 생소한 '라운지 음악'을 도입한 그룹 클래지콰이.포춘쿠키가 대중적인 인기도 얻고 있듯이. 이들처럼 음악을 위해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의 새 앨범 몇 장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룹 '못(MOT)'의 첫 앨범 '비선형'은 새로운 음악을 원하는 이들을 유혹할 만한 작품이다. 신곡을 듣다 보면 습관적으로 다음에 이어질 멜로디와 리듬을 추측하게 된다. 대개는 예상대로 흐름이 이어지곤 한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은 예측한 방향으로 가는 법이 없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고 세련된 흐름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놀랍다. 음악은 전반적으로 몽환적이면서도 정교하다. 못의 이언(27)과 지이(Z.EE.24)멤버는 모두 공대 출신이다. 공학도답게 "어떻게 하다 보니 나온 음악이 아니다. 의도를 세심하게 안배한 뒤 치밀하게 계산해서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언은 2001년 인터넷에 "스매싱 펌킨스.라디오 헤드.포티스헤드 등과 유사하면서도 록.재즈.트립합을 접목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함께할 사람을 찾는다"는 구인 광고를 내 지이를 만났다. 처음 마음가짐처럼 이들의 음악은 다양한 장르와 트렌드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다.

비록 비주류 음악에서 출발했지만 대중적으로도 환영받을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못'은 10월 개봉 예정인 장윤형 감독의 스릴러 영화 '썸(SOME)'의 전체 OST 작업을 맡았다. 9월에 개봉될 변영주 감독의 영화 '발레교습소'의 OST에도 이들의 음악이 삽입될 예정이다.

가수 이승환이 이끄는 기획사 '드림팩토리'가 내놓은 2인조 밴드 '시데리끄'의 첫 앨범 'First Aid Kit(구급상자)'도 독특한 음악으로 주목을 끈다. 상큼하면서도 몽롱한 록에 매력적인 전자 잡음이 슬쩍 얹혔다. 전자음악이긴 하지만 차갑다기보다는 나른하고 따뜻하다. 음악을 듣다 보면 낮잠을 자다 꿈을 꾸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이들은 자신의 앨범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이종교배된 새로운 형식의 잡종 록"이라고 표현했다.

가사가 모두 영어인 이유도 있겠지만 유럽의 밴드라고 착각할 정도로 세련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4인조 '다방밴드'의 2집 '프로덕트(product)'도 추천 음반이다. 라이브로 실력을 갈고 닦은 4인조 신인 '유스(U's) 밴드'의 첫 앨범 '유스(youth)'에는 멤버들의 땀과 눈물이 진하게 배어 있다.

이경희 기자<dungle@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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