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론]금융연수원 김한응 부원장…한국은행 독립 더 미뤄선 안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이번에 우리가 맞이한 금융위기는 1930년대에 미국이 맞이했던 대공황을 연상시킨다.

그 당시 주식시장이 너무 과열되는 것이 우려되었지만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 (연준) 이사회는 이에 대해 제동을 걸지 못했다.

당시 연준이사회 의장은 재무성 장관이었는데 그는 연준이사회가 주식시장에 대해 어떤 제동을 걸었을 때 그것이 계기가 되어 주가가 크게 떨어질 위험성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용기가 없었다.

그리하여 연준이사회는 주식시장이 붕괴될 때까지 아무 대책도 세우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서 결국 대공황이 일어나고 말았다.

미국은 이 대공황에서 배운 뼈 저린 경험에 의거 금융제도를 개혁하고 중앙은행이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재무성 장관을 연준이사회에서 배제시켜 중앙은행을 독립시켰다.

우리가 이번에 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 데는 미국의 경우보다 더 뿌리 깊은 원인이 있지만 재경원이 정치적 책임이 두려워 올바른 정책을 취하지 않은 데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앞으로 우리도 이번의 위기가 누구의 책임이며 행정제도를 어떻게 고쳐야 다시 이런 위기를 겪지 않게 될지 철저히 파헤쳐야 하겠지만 적어도 중앙은행을 철저히 독립시키는 문제와 금융기관들에게 확실한 '주인' 을 찾아주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 사람이 없어졌을 것이다.

남은 것은 감독기구의 통합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보면 은행감독원을 떼어서 증권감독기능과 보험감독 기능과 함께 통합감독기구로 흡수하는 방안이 여론의 대세를 이루고 있으나 이 점이 또한 크게 반발을 사고 있는 대목임은 잘 알려져 있는 일이다.

문제를 단순화하기 위해서 은행감독기능과 관련된 문제만을 떼어놓고 보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통합감독기구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을 중화 (中和) 시키는 정책을 쓰지 못하게 할 보장책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중앙은행과 은행감독원을 분리하였지만 이러한 보장책이 철저하여 중앙은행 독립이 확실하게 지켜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오늘날의 안정되고 번영하는 독일이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은행감독기능을 한국은행에서 분리하여 통합감독기구에 흡수시킨다고 해도 이러한 보장책이 철저하게 마련된다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기구의 장이 임명될 때 금융통화위원회의 동의를 받게 하고 통합감독기구가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규정을 만든다든가 할 때에는 금융통화위원회의 승인을 받게 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보장책을 마련할 자신이 없으면 은행감독기능을 현재대로 두는 것이 중앙은행의 독립을 더 확실하게 보장하는 방법이다.

이제부터는 모든 정책과 제도 개혁의 목표를 투명하게 드러내 놓아야 한다.

모든 것을 정직하게 원칙에 따라 처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계금융시장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이 위기로부터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된다.

국회가 금융개혁 문제를 다시 다룰 때에는 이 점에 특히 유의해 주기 바란다.

김한응 <금융연수원 부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