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피아니스트 강주희, '블루노트'서 첫 연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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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뉴욕 맨해튼 서남쪽 그리니치 빌리지에 자리잡은 재즈 클럽 '블루 노트' .81년 문을 연 이곳에선 고 (故) 디지 길레스피와 모던 재즈 쿼텟이 연주했고 지금도 레이 찰스. 허비 행콕. 윈튼 마샬리스등 당대 최고의 거장들이 수시로 신기를 발휘하고 있다.

한국인이 처음으로 이 꿈의 무대에 선 것은 지난달 24일. 뉴욕대에 다니는 재즈 피아니스트 강주희 (26) 씨가 그 주인공이다.

트럼펫 연주자인 찰스 톨리버가 지휘를 맡았고 뉴올리안스에서 온 색소폰 연주자와 파리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리오에서 온 드럼 연주자가 어우러진 국제협연이었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의 주제가로 잘 알려진 '컴 레인 오 컴 샤인' 을 시작으로 '세이 소프틀리' 와 '체리 쥬스' 를 거쳐 까다로운 변주를 요구하는 '만데카' 로 끝을 맺기까지 강씨의 손가락은 미친듯이 춤을 추었다.

오후9시부터 새벽1시까지 휴식시간 30분외에는 숨돌릴 틈조차 갖지 못했던 그녀는 연주를 마치고 "아직도 정신이 없다" 고 털어 놓았다.

리허설을 갖기는 했지만 상황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것이 재즈인데다가 공식적인 '무대' 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강씨가 재즈 피아노를 공부한 것은 이제 3년째. 건반을 만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입학전부터지만 클래식 피아노가 전공이었다.

"그저 음악이 미친듯이 좋았던" 그녀는 19살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음대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차츰 회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수백년 동안 정해져 내려온 악보, 정해진 연주법, 그 어디서도 그녀 자신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한 토막의 재즈 피아노 연주가 강씨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세상에 이런 소리도 있었구나" .당장에 레코드 가게를 찾았고 결국 94년에는 4년간의 잘츠부르크 생활을 청산하고 뉴욕으로 오게 되었다.

그때까지 배웠던 모든 것을 버리는 심정이었다.

재즈 연주에 대해 아는 것은 "피아노 건반의 '도레미' 가 어디있는지" 정도였기에 두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지 3년만에 학교에서의 연주가 눈에 띄어 '블루 노트' 에 서게 된 것이다.

강씨는 "공연을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앞으로는 더 많이 배워야 하구요" 라고만 소감을 밝혔다.

내년에 졸업한 뒤에도 뉴욕에 남아 연주경험을 더 쌓을 계획인 그녀는 영화음악 작곡이라는 또 하나의 꿈을 키우고 있다.

영화를 매개로 자신의 소리를 좀더 넓게 울리게 하고 싶다는 것. 뉴욕대에서 독립영화를 만드는 학생들과 함께 그 첫걸음을 뗄 계획이다.

뉴욕 = 양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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