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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 일본엔 ‘집사 열풍’ 불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9호 06면

유난히 긴 한 주였다. 몇 달간 ‘손발이 오글오글해지는 재미’를 안겨줬던 KBS ‘꽃보다 남자(꽃남)’의 준표를 지난주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허전함을 달래려 급히 ‘대타’를 찾던 중 이 드라마를 발견했다. 한국 여성들이 ‘꽃남 광풍’에 몸을 떨고 있을 무렵, 일본 여성들의 ‘손발 오그라듬’을 담당했다는 후지TV의 2009년 1분기(1~3월)작 ‘메이의 집사(メイちゃんの執事)’다.

이영희 기자의 코소코소 일본문화

이 드라마는 방영 초반까지는 큰 기대를 모으지 못했다. 최근 일본 TV에서 시즌마다 계속되는, ‘꽃미남이 다발로 나오는’ 드라마의 재탕인 데다 원작 만화 자체가 워낙 황당무계한 것으로 소문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20대의 지지로 시작된 한국판 ‘꽃남’이 30~40대 여성들까지 순식간에 감염시켰듯 이 드라마 역시 세대를 초월한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1분기 드라마 시청률 3위라는 예상 외의 성공을 거뒀다.

굳이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일본 내 최상층 가문의 아가씨들만 다닌다는 성 루치아 학원(왠지 ‘신화고’를 떠올리게 한다)에 어느 날 가난한 우동집 딸인 메이(역시 ‘금잔디’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가 전학을 온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아가씨들에게는 24시간 ‘꽃미남 개인 집사’들이 따라다니는데, 이들이 바로 이야기의 핵심이다. 주인공 메이의 상대는 집사 중에서도 최고 등급인 ‘S랭킹’의 시바타 리히토.

집사들이 자신의 아가씨에게 베푸는 헌신적인 보살핌과 “너란 아이, 참 귀여운 아이로구나”(‘꽃남’ 윤지후)를 능가하는 안면 간지러운 대사들(예를 들어 “그 더러운 손을 우리 메이님에게서 당장 떼지 못해!!” 등등)은 “아아~ 정말 못 봐주겠구나”를 외치면서도 계속 보게 만드는 무서운 중독성을 발휘한다.

오랜만에 만난 일본 친구에게 ‘꽃남 F4’와 ‘집사 오빠들’에 대한 애정을 털어놓은 결과 “너도 후조시(腐女子)로구나”라는 슬픈 진단을 받고야 말았다. 한국말로 옮기면 ‘썩은 여자’로 해석되는 ‘후조시’는 같은 발음의 ‘부녀자(婦女子)’를 변형시킨 말장난인데, 원래는 ‘야오이(남성 동성애물)’를 즐기는 여성들이 자조의 의미로 만들어낸 단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 오타쿠(한 분야에 깊이 빠진 사람)’들, 특히 만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꽃미남들의 연애담에 빠져 현실에서의 연애와 결혼을 등한시하게 된 20~30대 여성들을 총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메이의 집사’가 예상 외의 큰 인기를 얻은 이유에 대해 ‘후조시 파워’를 꼽고 있는 모양이다.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도쿄 이케부쿠로에는 ‘집사 카페’도 성행하고 있다. ‘남자 오타쿠’들을 대상으로 하는 ‘메이드 카페(여자 종업원들이 하녀 복장을 하고 시중을 드는 카페)’와 비견되는 집사 카페는 정장을 한 남자 종업원들이 문을 열어 주고 종을 흔들면 달려와 물도 따라 주며, 화장실 앞까지 안내도 해 주는 그런 곳이란다. 기왕 ‘썩은 여자’로 명명당한 마당에 다음 번 일본 여행에서는 꼭 집사 카페에 가 보리라 결심하는 찰나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메이의 집사’로 톱스타 자리에 오른 미남 배우 미즈시마 히로(24/사진)가 돌연 여가수 아야카와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른 결혼이 “여자친구의 난치병 치료를 돕기 위해서”라고 밝혀 ‘헌신적인 집사’에 대한 ‘후조시’들의 환상을 현실로 완결시켜 주기까지 했다.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가요·만화 등을 담당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 ‘스마프(SMAP)’를 향한 팬심으로 일본어·일본 문화를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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