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주석단에 앉은 그는 왼손가락을 쓰지 않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해 8월 뇌졸중 발병 이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급격한 노쇠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김일성(1994년 사망) 주석으로부터 권력 승계를 마무리한 10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98년 9월·사진左)와 뇌졸중 발병 1년여 전인 11기 최고인민회의 5차 회의(2007년 4월·中), 발병 후 8개월 만에 참석한 12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9일·右)에서 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증을 들어 찬성을 표시하고 있다. 9일에는 마이크가 치워진 걸로 봐서 연설을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포토]

약간 절뚝거리는 듯한 걸음걸이,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왼손, 움푹 들어간 볼과 굳은 표정의 얼굴. 그럼에도 두 손을 올려 박수를 치는 모습.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생생한 움직임이 지난 9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공개한 12기 최고인민회의의 첫 회의 동영상을 통해 드러났다. 지난해 8월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이후 김 위원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동영상은 지난 7일과 9일 현지지도 기록영화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기록영화는 올 1월까지의 활동만을 담았다. 당일 촬영된 김 위원장 모습이 당일 공개된 것은 이번 회의가 처음이다.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는 북한의 체제 안정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9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 등장한 그의 모습에 당국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전문의들은 당사자를 직접 진료하지 못한 한계를 전제하면서도 회의장 정중앙(주석단)에 앉아 있던 김 위원장의 왼손과 그의 걸음걸이를 지적했다. 김영인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교수는 “탁자 위에 있던 서류를 끌어당길 때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서류 위에 손을 얹어 끌어간 동작이나 박수를 칠 때 왼손 동작이 부자연스러운 점으로 볼 때 마비 징후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민양기 한강성심병원 신경과 교수는 “보행할 때 오른발보다 왼발의 체공 시간이 짧은 것이 눈에 띈다”며 “이는 오른발을 오래 딛고 서 있어서 뒤뚱거리며 걷게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민 교수는 “몸의 왼쪽 마비 증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방증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종은 을지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박수를 치는 동작에서 왼손은 가만히 있고 주로 오른손을 움직이는 것으로 볼 때 왼팔의 몸통부(근위부) 상태는 괜찮지만 손가락으로 세밀한 운동을 하는 데는 아직 장애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며 “회의 내내 굳은 얼굴을 하고 있어 좌측 안면에도 일부 마비 증상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북한이 공개했던 김 위원장의 수영장 방문 사진 때와 같이 수척해진 얼굴도 여전했다. 배희준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체중 감소로 많이 수척해 보인다”며 “뇌졸중을 경험했다면 식사하기가 불편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문의들은 전반적인 움직임으로 볼 때 통치에는 이상이 없을 것으로 진단했다. 김영인 교수는 “왼손 마비는 우뇌의 영향이며, 일반적으로 좌뇌가 언어·인지를 담당한다”며 “따라서 김 위원장은 적어도 좌뇌에는 이상이 없어 말하거나 통치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종은 교수도 “과거 김 위원장 사진에서 왼손을 아예 주머니에 넣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이번에 박수를 치거나 팔을 흔들며 걷는 상태가 나타난 것은 호전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채병건 기자

◆도움말 주신 분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배희준 교수

한강성심병원 신경과 민양기 교수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김영인 교수

을지대병원 신경과 전종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