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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식 기자의 ‘사람·풍경’ ] 양로원 만든 노부부의 베푸는 여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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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신재홍(右)·조행희(왼쪽에서 셋째) 원장 부부가 잠시 놀러 온 딸(오른쪽에서 둘째)과 손녀, 그리고 세심원 식구와 함께 봄볕을 쬐고 있다. 여섯 살배기 손녀의 재롱이 모두를 웃게 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그곳을 찾은 건 이달 8일. 충북 제천 덕산면 도기리 월악산 기슭에 자리 잡은 세심원(洗心院)은 산수유 꽃이 한창이었다.

이 양로원은 신재홍(72)·조행희(68)씨 부부가 폐교를 사들여 집처럼, 정원처럼 가꾼 곳이다. 운동장엔 덤프트럭 400대 분량의 자갈을 깔고, 그 위에 마사토를 덮었다. 폐교 뒷산을 사들여 산책로를 만들고, 매실 나무 300그루도 심었다. 1층짜리 학교 건물은 골격만 남긴 채 완전히 리모델링했다. 새로 벽을 세워 온돌방을 만들었고 그 위에 침대를 놓았다. 식당과 휴게실도 마련했다. 손을 안 댄 건 이승복 어린이와 독서하는 소녀의 석상뿐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 2급 공무원이던 남편과 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아내가 은퇴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이렇게 10년의 시간과 7억여원의 돈을 들인 끝에 2007년 세심원이 문을 열었다.

#. 마지막 집

부부는 폐교의 옛 사택을 고쳐 산다. 그들은 세심원이 ‘고독한 이들의 마지막 집’이길 바란다. 그래서 기초수급권자만 받고 있다. 정부 지원이나 후원은 받지 않는다. 운영비는 월 500만원이 넘는 부부의 연금과 재산에서 나온다. 현재 입소해 있는 사람은 3명이다. 3월까진 4명이었다.

지난해 들어온 김병렬(75) 할머니는 지난달 남편(82)을 떠나보냈다. 54년을 함께 살았지만 자식은 두지 못했다. 아침이면 할아버지는 자전거로 운동장을 돌았고, 할머니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할아버지에겐 대장암이 있었다. 좀체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하는 할아버지를 원장 부부가 설득해 병원으로 데려갔다. 암은 폐까지 전이돼 있었다.

그 양반 갈 때 이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줬어. 나도 혼자 살다 죽으면 누가 받아내겠어. 할머니는 남편 얘기를 하다, 곧 자기 얘기를 했다.

아흔 살의 송금녀 할머니. 방년 18세에 시집을 갔지만, 26세에 쫓겨났다. 자식은 없었다. 화장품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팔았고, 시골 마을회관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늙어갔다. 원장 부부가 점심 먹을 시간이라고 하자, 할머니는 몸을 일으켰다. 하루 세 끼 챙겨 먹는 재미가 있어. 할머니는 정정하게 말했다.

42세 정미(가명·여)씨는 서울 사람이다. 19세에 가출해 강릉에서 살았다. 말하기 부끄러운 험한 일을 하며 살았다고 했다. 4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오른쪽 몸이 마비됐고 말문이 막혔다. 그제야 부모에게로 돌아갔다. 늙은 엄마는 지난해 딸을 이곳에 맡겼다. 정미씨의 침대 옆엔 78살 엄마의 사진이, 액자 없이 놓여 있다. 정미씨는 가끔, 이젠 마실 수 없게 된 술을 찾는다. 그럴 땐 행희씨가 정미씨와 TV 드라마를 본다.

#. 다 주고 간다

68년 2월. 신혼이었다. 남편 재홍씨가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2시간을 못 넘기겠습니다, 의사는 말했다. 아내는 그저 빌었다. “외로운 이들을 위해 평생 돈을 모을 것이고, 모두 주고 떠나겠다”고 무작정 약속했다. 남편은 밤을 넘겼다. 쓰러진 지 8일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은 눈을 떴다. 의사는 기적이라고 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약속’을 전했고, 남편은 따랐다.

아내 월급은 무조건 은행에 넣었다. 딸이 태어난 후 살림이 쪼들릴 때도 있었지만 적금을 깨지 않았다. 역사를 공부하던 남편은 조선왕조실록 한 질을 내다 팔았다. 그렇게 모은 돈을 도기리의 폐교에 쏟아부었다. 주변에선 “발 빠르게 투자했네”라고들 했다. 부부는 그 말에 화내지 않았다. 부부는 근력이 떨어지면 세심원의 침대 하나를 차지할 생각이다. 남편은 "시설은 가톨릭 관련 기관에 기부할 것”이라고 했다.

2년 전, 부부는 경기도 과천의 임야를 10억원에 처분했다. 인재 양성을 위해 써 달라며, 아내가 나온 고교에 전부 기부했다. 부부에겐 외동딸 수미(37)씨가 있다.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할 무렵부터, 수미씨는 수없이 이런 계획을 들어왔다. 딸은 쉽게 부모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수미씨가 둘째 딸(6)을 데리고 세심원에 잠시 놀러 왔다. 수미씨는 뒷산에서 쑥과 달래를 뜯었다. 손녀는 철모르고 뛰어다니다 춤을 추기도 했다. 어린 것은 양로원에 금세 생기를 불어넣었다.

운영하기 힘드시겠다고 하자, 원장 부부는 “집과 재산이 더 있어서 10명까지는 모실 수 있다”고 했다. 여유. 부부는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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