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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도 무한경쟁시대 돌입…IMF협상타결로 고유업종등 보호장치 없어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중소기업들은 국제통화기금 (IMF) 지원체제가 본격 가동됨에 따라 생존을 위한 피나는 경쟁에 내몰리게 됐다.

특히 현재 대그룹들마저 자금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태라 이 여파가 이어질 경우 연말에는 중소기업의 대량 부도사태가 우려된다.

우선 IMF의 권고에 따라 재정지원 규모가 크게 축소될 것이 확실시되는데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등 중소기업 지원 울타리도 철폐되거나 더욱 낮아질 것으로 보여 예전의 자금난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경영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우량 중소기업들의 개발자금등으로 지원됐던 구조개선자금은 내년에 배정된 2조원이 그대로 집행될지 불확실해졌다.

중소기업협동조압중앙회는 이번 IMF사태와 관련한 보고서에서▶금융기관의 합병에 따른 여신심사 강화▶대출축소▶기존 대출금 회수▶어음할인 기피현상의 심화 등을 우려했다.

특히 외국은행이 국내 금융기관 경영에 참여할 경우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 배려의 폭은 좁디좁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신세 또 부도유예협약, 협조융자등 각종 경쟁제한장치의 축소 또는 폐지가 예상됨에 따라 부실대기업의 파산은 곧바로 중소기업자금 조달 창구인 어음과 사채시장의 큰 혼란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게다가 대기업과의 계열생산 관계를 맺어 경영사정이 상대적으로 좋았던 대기업 협력업체들도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예전과 같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돼 계열 협력업체들도 적자생존 (適者生存) 시대를 맞게 됐다.

또 독립적 경영을 하는 상장 중소기업 주식들이 연일 하한가를 기록하는데도 주식 거래량이 극히 부진한 등 총체적인 중소기업 수난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임충규 (林忠圭) 사업이사는 "IMF의 정책개입이 드세지면 개방과 경쟁 논리가 힘을 얻어 중소기업 입지는 갈수록 좁아질 것" 이라며 "특히 자금줄 확보와 내수부진에 따른 판매위축등으로 상당한 중소기업의 부도가 우려된다" 고 말했다.

◇ 자금난 가속화 = 대기업들이 최근 몇년동안 중소기업지원책의 하나로 실시해오던 현금결제는 옛날 이야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대기업의 코가 석자여서 중소기업들을 도울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은 IMF에서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제도로 지적돼 축소되거나 아예 폐지될 가능성이 있다.

중소기업 의무대출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시중은행은 원화자금대출 증가액의 45%이상, 지방은행은 75%이상, 외국은행 국내지점은 35%이상을 각각 중소기업자에게 지원하도록 하는 제도이나 올들어 이미 의무비율을 지키지 않은 은행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음할인도 하늘의 별따기 김포에서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M금속은 최근 대기업들이 현금결제는 커녕 어음도 대부분 6개월이상 짜리를 발급하는데다 이마저 할인할 수 있는 길이 막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특히 한 자동차업체는 중소기업납품대금인 2억~3억원 단위의 어음결제를 늦춰 이번주초 납품량을 줄일수 밖에 없다는 공문을 해당회사에 띄웠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연명하기 위해선 납품거절 조치까지 각오하는 비상수단을 취할수 밖에 없었다" 고 M금속 L영업담당이사는 말했다.

중소 수출업체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서울 화곡동 액세서리 수출업체 D무역은 최근 은행들이 연지급수출 (유전스) 신용장 거래를 중단하는 바람에 운영자금이 이미 바닥났다.

이 회사 K대표는 "향후 일주일간 자금이 돌지 않으면 문을 닫을수 밖에 없다" 고 하소연했다.

◇ 봇물이룰 부도사태 = 상장 주방용품 메이커인 ㈜셰프라인은 4일 제2금융권의 대출금 회수로 부도를 냈다.

이 회사는 화의신청을 준비하고 있으나 회생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태다.

이 회사는 국내 굴지의 주방용품 메이커로 수출비중도 높은 편이지만 종금사에서 어음을 일시에 돌려 흑자부도를 맞았다.

올 상반기에 2백30억원의 매출을 올려 5억원의 순익을 냈던 이 회사 관계자는 "우리같이 경쟁력이 있는 회사마저 좌초하는 마당에 우리보다 못한 중소기업들의 경영상황은 오죽하겠는냐" 고 말했다.

보증기금 확대등 급선무 중소기업연구원의 홍순영 (洪淳英) 박사는 "연매출 20억원 안팎의 영세 중소기업들의 연쇄부도가 빚어질 경우 우리나라 산업의 뿌리가 통째로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며 "어음 보증기금을 확대하는등 비상대책을 세워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 보호우산 없어진다 = 단체수의계약제도.고유업종등 대기업과의 경쟁을 제한해 중소기업에 직접적인 혜택을 주었던 이들 제도들도 손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 일각에서도 이전부터 중소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해와 축소되거나 폐지시한이 앞당길 가능성이 커졌다.

고윤희·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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