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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기행]23.전남순천 선암사…만다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암울한 시대에도 연꽃은 피어난다.

색계.주계를 어긴 파계승에게도 열반의 기회는 존재한다.

만다라 (81년제작.임권택 감독) .불법 (佛法) 의 모든 덕을 원만하게 갖춘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불교영화 만다라는 79년 대통령의 피살, 그로 인한 사회혼란, 군사정권이 출현하는 가운데 탄생했다.

전북 이리시 부근 만경평야. 완장을 두른 군인이 시외버스에 올라 주민등록증을 검사하기 시작한다.

이때 파계승 지산 (전무송 분) 은 삭발한 머리를 가리키며 '이게 신분증이 아니냐' 고 말하지만 검문소에 발이 묶인다.

이를 본 젊은 수도승 법운 (안성기 분) 은 안면도 없는 지산을 아는 스님이라며 검문소에서 빼내고 이들의 고행은 시작된다.

선암사 (전남순천시) .신선이 하강했다는 강선루가 사찰의 입구로 첫 걸음부터 범상치않은 곳이라는 생각을 들게한다.

스님의 낭랑한 독경과 풍경소리는 찾는 이의 마음까지 맑게 한다.

만다라의 당초 촬영예정지는 전남 구례 화엄사였지만 우여곡절끝에 이곳에 터를 잡았다.

대웅전 옆의 노전은 지산이 한때 동료 학승이었던 주지스님에게 '소주를 가져오라' 고 호통쳤던 곳. 법운은 지산을 나무라지만 '마음의 부처' 를 외치는 지산에게는 '소귀에 경읽기' 다.

큰방으로 불리는 승방에 들어가면 만다라에 나타난 스님들의 일상생활이 그려진다.

한 노스님이 죽비를 들고 한번, 두번, 세번을 치면 스님들이 하나둘씩 기상하고 스승과 제자의 선문답이 진행된다.

법운이 스승으로부터 '병속의 새를 꺼냈느냐' 는 질문을 받던 선원의 한 담벼락. 지금도 이곳 선원에서는 선원장인 향산스님과 전각스님등 제자들의 수행정진이 계속되고 있다.

'병속의 새' 와 관련, 향산스님은 "병속의 새를 꺼내고 못 꺼내는 문제는 물리적인 차원이 아닌 마음의 차원" 이라고 말한다.

서울의 한 창녀촌. 이곳에서 지산은 색계를 어기게한 첫사랑이자 창녀인 옥순과 거리낌없이 어울린다.

법운도 창녀의 유혹을 받지만 색계를 지킨다.

법운과 지산은 설악산 오색약수터 한 암자에 그들만의 터를 잡는다.

겨울눈이 가득한 설악산에 나타난 두 사람의 모습은 영상미의 압권이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만다라의 주촬영기술은 공간촬영이다" 며 "공간촬영은 사람을 중심이 아닌 주변에 두어 여백을 최대한 두도록 한 촬영기법" 이라고 말했다.

지산은 이 곳에서도 방황한다.

그는 진정한 불법을 설파하지만 맹목적인 구복만을 요구하는 신도들앞에서 '사이비' 로 외면당한다.

결국 지산은 두손을 합장한 채로 동사하며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때 법운은 암자와 지산의 시신을 함께 태워 화장식을 한다.

서울 남대문앞 빵집. 법운은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어머니와 만난다.

어린 법운을 친척집에 맡긴채 재가한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버린 것이다.

아마 법운은 이때서야 '병속의 새' 를 꺼냈을 것이다.

순천 = 송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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