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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계획협회 '딸사랑 한마당 잔치'…남녀불평등해소로 성비 불균형 막아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3대독자 남편에게 시집와 첫딸을 낳았을때 너무 서운하고 면목이 없어 눈물만 흘렸어요. 그런데 도박과 여자에 빠져 가정을 멀리하던 남편이 예쁘고 똑똑하게 자라는 딸 보는 맛에 집으로 돌아오게 됐지요. ” (김매옥씨.34.대구시달성군화원읍) 남아선호사상을 없애고 딸.아들이 더불어 사는 넉넉한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로 지난달 29일 대한가족계획협회가 마련한 '딸사랑 한마당 잔치' 에서는 딸을 가진 부모들이 딸과 함께 나와 '키울수록 사랑스러운' 딸자랑을 늘어놓았다.

딸셋을 둔 이병순 (50.서울송파구신천동) 씨는 "일류대학에 척척 합격해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딸들이 아빠가 위암으로 투병을 할때도 돌아가며 정성껏 간호를 하고 위로편지를 쓰는등 뜨거운 혈육의 정을 느끼게 했다" 며 "늘 내게 봉사활동등을 제안하고 성심껏 도와주는 딸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덜 행복했을 것" 이라고 딸 예찬론을 폈다.

딸을 둔 아버지들도 딸 키우는 재미자랑에 나섰다.

유치원에 다니는 두 딸을 둔 김민수 (34.서울송파구가락동) 씨는 "커서 아빠랑 결혼하겠다는 사랑스러운 딸들의 모습을 매일 육아일기 속에 적고 있다" 며 "부모가 자신들을 소중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신뢰감을 심어줘야 딸들이 자라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것" 이라고 강조했다.

아들 선호도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 아들을 낳기 위한 각종 비법들이 공공연히 행해지는가 하면 뱃속의 아이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낙태를 서슴치않는 비정한 부모가 어림잡아 한해 2만5천여쌍이나 된다.

태아성감별에 의한 임신중절로 성비불균형이 심화돼 여아1백명당 남아의 비율 (출생성비) 이 현재 1백15에 달하고 있다.

2000년에는 1백20을 넘을 것으로 추정돼 결혼풍속도 변화.성범죄 증가.동성애 증가등 사회문제까지 우려되고 있다.

이날 자유발언대에 나온 정하진 (역촌초등1년) 양은 "엄마가 백말띠 딸이 안좋다고 나를 낳을까 말까 망설이셨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딸도 아들 부럽지 않게 훌륭한 사람이 될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다" 고 각오를 밝혔다.

이렇게 소중한 생명인 딸을 낳는 것이 왜 피하고 싶은 일이 돼 버렸나.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여성이 동등하게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남녀 출생성비 불균형을 해소하는 지름길" 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법률에 나타난 여성불평등' 을 주제로 발표한 이화여대 법학과 최금숙교수는 "특히 재산에 관한 법률에서 여성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고 말했다.

'부부별산제' 를 기초로 하고 있는 현행 민법에서 부부가 공동노력으로 모은 재산을 대체로 남편의 단독명의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혼이나 상속을 할때 여성이 불리한 지위에 처할수 밖에 없다는 것. 일일이 공동명의로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저축을 하려고 해도 '남자 기 죽인다' 식의 비난이 따르고 부부 공동명의로 등기된 부동산은 은행에서 담보로 삼기 꺼리는등의 사회관행때문에 망설이게 된다.

따라서 최교수는 "혼인중에 취득한 재산은 누구 명의로 돼 있든지간에 부부공유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민법이 개정돼야 주부의 가사노동이 정당하게 평가되고 권리가 보호될수 있다" 고 주장했다.

또한 사회제도나 구조 개선과 함께 딸을 가진 부모들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도 시급한 과제로 지적됐다.

상계백병원 이홍균 (산부인과) 원장은 "아들이 없는 부모들은 가문의 대를 잇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아들이 없다는 생각에서 오는 열등감에 시달기리도 한다" 며 "이때문에 부부간의 불화가 생기거나 아이에게 이유없이 짜증을 내며 적절히 돌보지 않는등 제2의 가정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고 발표했다.

이원장은 이런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존엄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정하고 '딸은 소용없다' 는 식의 성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등 부모의 인식전환이 가장 중요하다" 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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