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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TV합동토론]논평(5)…경제가 더 깜깜해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지난 1일의 대선후보 경제문제 TV합동토론회. 후보들은 처참하게 무너진 우리 경제를 무슨 방도로,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 일으켜 세우려는 것일까, 유권자들은 그 복안을 들으려고 모였다.

그들은 정치와 관료가 개입되는 최대의 경제해악인 정경유착을 두고도 강도 높게 비판은 했으나 그 원인이 정치와 관료가 고의로 쳐 놓은 뇌물거두기 덫인 경제규제에 있다고 참회한 후보는 하나도 없었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李會昌) 후보는 정경유착의 원인이 재벌의 경제력 비대와 정치권의 부패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대로' 만 알았지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는 지근 (至近) 거리 정답을 내놓을 의지까지는 없어 보였다.

이런 공전 (空前) 의 경제난국에 봉착해 의식 있는 정치가라면 "내 탓이오" 가 참회와 함께 터져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회의 김대중 (金大中) 후보는 야당이 정경유착의 책임을 지는 나라는 세상에 없다며 정권을 야당으로 교체해야 이 유착을 끊을 수 있다고만 강조했다.

여야구분 논리를 동원해 '3金청산론' 속으로 현직 대통령과 함께 묻혀 들어가는 것만 극력 방어하는 모습이었다.

국민신당 이인제 (李仁濟) 후보는 정당교체는 물론 세대교체마저 있어야 정경유착을 끊을 수 있다는 아전인수격 선전만 했다.

그러나 나이가 젊다고 깨끗하지는 않다는 것을 김현철 (金賢哲) 씨의 예가 증명한 것은 모든 사람의 기억에 너무도 새로운 최근의 일이다.

과제가 실업대책으로 넘어가면서 토론은 더욱 한심해졌다.

일자리를 이미 잃은 사람과 잃을까봐 현재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 숫자를 합하면 수백만명에 달할 것이다.

말만 잘하면 무더기로 끌어올 수 있는 것이 이런 표라는 것만은 세 후보 모두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김대중후보는 정리해고제 실시를 연기하고 감원 대신 임금억제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거기에다 1년에 벤처기업을 1만개씩 설립해 50만~1백만개씩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다만 이것을 달성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이회창후보는 해고를 강제로 막기는 힘들 것이라며 노사간 자율협의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이건 대책도 못 된다.

이런 자율협의는 새로운 노사분규만 확대할 것이다.

기업이 생존상 불가피해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기업이 결정할 일이다.

정부로서는 다만 노동자에게는 직업훈련을 매우 광범하게 실시하고 기업에는 행정상의 절차와 비용을 영 (零)에 가깝도록 혁명적으로 떨어뜨려 일자리 만드는 창업을 고무하는 일밖에 도리가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후보는 왜 없을까. 이인제후보는 단기적 대책을 강조하며 새로 3조원의 실업대책 예산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는데 국회를 통과한지 2주일도 안된 예산을 국제통화기금 (IMF) 이 구조금융 제공조건으로 7조원이나 깎도록 요구하고 있는 현실에서 어디서 당장 3조원의 예산을 따로 불리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그는 농어촌에 향후 10년간 1백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투자의 생산효과를 제시하지도 않고 쓸 돈 액수만 불리는 것은 누구를 현혹하자는 것인가.

김대중후보는 당선되면 IMF와 새로 협상을 벌여 이번에 지워지는 이행조건을 대폭 완화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는 IMF가 세 대선후보에게 요구하는 '구제금융에 따른 이행조건 준수동의' 에 국민회의도 응하겠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래서야 IMF만 어리둥절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도 어리둥절하다.

이번 토론회는 IMF의 조건을 회피하는 방법을 놓고 벌인 한바탕 말 시합이었을까. 아니다.

시청자가 기대했던 것은 IMF와 약속한 조건을 가장 착실하게 준수하면서 하루바삐 이 국난을 벗어나는 방도를 놓고 세 후보가 벌이는 가장 진지한 토론이었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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