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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아침’ 11년 2개월의 기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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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1998년 1월 14일자 본지 1면 오른쪽 하단에는 남자 손지갑만한 크기의 사고(社告)가 실렸다. 고은 시인이 매일 명시 한 구절과 그에 대한 해설을 2면에 연재한다는 내용이었다. 사고는 연재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각박한 현실과 바쁜 일상의 숨통을 터줄 ‘詩(시)가 있는 아침’과 함께 좀 더 넉넉하고 따뜻한 하루를 여시기 바랍니다.”

그로부터 11년 2개월 여. ‘시가 있는 아침(이하 ‘시아침’)’은 이미 2900회를 넘었고 다음달 3000회를 돌파한다. 그동안 ‘시아침’ 난을 통해 독자의 아침 식탁을 찾아간 시편들은 그 축적 자체가 한국 현대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유의미한 데이터베이스다.

우선 꼬박 2년을 연재한 첫 필자 고은 시인부터 이근배·김용택·오세영·안도현·이시영·김화영·천양희·이성복·정진규·김광규·최승호(연재 순)씨 등 필진 39명은 그들 스스로가 현대시의 한 풍경을 일군 우리 시단의 일급 시인들이다. 이들은 향가·고려가요 등 작자 미상인 작품 19편을 제외한 시인 899명의 2782편을 소개했다. 시가 제일 많이 소개된 시인은 정진규 시인으로 27회였고 정현종(26회), 문정희·이시영(이상 24회), 나희덕·안도현·장석남·황동규(이상 22회)씨 등이 뒤를 이었다. 가장 자주 인용된 시는 김종삼의 ‘묵화’, 이정록의 ‘의자’, 정끝별의 ‘밀물’ 등으로 각각 네 차례 인용됐다. 세 차례 인용된 시는 고은의 ‘순간의 꽃’, 함민복의 ‘긍정적인 밥’ 등 21명의 22편이었다.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시편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셈이다.

시인 정끝별씨는 “1930년대 신문은 당시 문학담론 생산의 중심이었다. 발표 당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 일으킨 이상의 시 ‘오감도’도 신문에 처음 연재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최근 국문학 연구자들은 ‘신문문예’라는 학술 용어로 당시 정황을 표현한다”며 “중앙일보의 ‘시아침’은 그런 전통에 맥이 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본지의 ‘시아침’ 연재 이후 다른 신문사들도 시를 소개하는 코너를 잇따라 만들었다. ‘애송시 시리즈’ ‘이주의 신작시’ 등으로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시 한편에 해설을 붙인 엇비슷한 분량의 형식들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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