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영 기자의 장수 브랜드] 해태제과 부라보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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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금 40대 후반 이상은 코흘리개 어릴 적 동네에서 아이스케키 장수를 자주 접한 세대다. 동네에서 말뚝박기나 다방구 같은 놀이를 하다가 “아이스케키 사려∼” 하고 외치는 아이스케키 아저씨를 볼라치면 입맛을 다시면서 주머니 속 동전을 세어 보곤 했다. 지금이야 아이스케키가 아닌 아이스크림이 지천으로 깔려 있지만 그 당시엔 우리나라에 아이스크림이 없었다. 그때가 1970년 이전이었다.

시계를 40년 전으로 돌린 69년. 해태제과 진홍승(68) 박사(94년 퇴사)는 회사로부터 특명을 받았다. 하드 형태의 ‘아이스케키’가 아닌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개발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덴마크와 독일·스위스 등 낙농 선진국을 석 달간 돌아다녔다. 그러고는 큰돈을 주고 덴마크 호이어사로부터 아이스크림 생산 설비를 도입했다.

하지만 설비만 들여왔다고 아이스크림이 “옛따” 하고 나오진 않았다. 우선 재료를 안정적으로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유에 탈지분유를 첨가해야 했는데, 탈지분유를 제대로 만드는 곳이 없었다. 암시장에서 구한 미군부대 탈지분유를 협력사에 들고 가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덴마크 사람들이 먹는 아이스크림 콘은 초콜릿과 아몬드를 입힌 고급 제품.

하지만 국내에선 사람들이 사먹을 수 있을 수준으로 원가를 맞춰야 해 초콜릿을 쓰지 않고 땅콩을 아몬드 대신 뿌리기로 했다. 남대문시장을 뒤져 땅콩 공급자를 찾아냈다. 담배 포장지를 만드는 회사와 머리를 맞대고 물기가 스며들지 않는 뿔 모양의 은박지 포장지를 어렵사리 완성했다.

수백 번 배합을 달리해 뿔 형태의 콘 과자를 만들어 봤지만 모양과 크기가 만들 때마다 제각각이었다. 더 큰 난관은 아이스크림을 콘에 넣고 난 이후였다. 아이스크림의 습기 때문에 콘이 금방 눅눅해져 버렸다.

1년여에 걸친 실험 끝에 콘 과자에 들어간 설탕과 물엿의 배합을 맞춰 쉽게 눅눅해지지 않는 콘을 만들었다. 여기에 딱 맞는 온도의 아이스크림을 콘에 넣는 것이 관건이었다. 영하 7도~영상 1도 사이의 아이스크림(정확히 몇 도짜리를 넣는지는 비밀이다)을 콘에 넣은 다음 급속 냉각 터널에 통과시켜 냉각했다. 마침내 70년 4월 ‘부라보콘(사진)’이 완성됐다.

어렵사리 세상에 나온 부라보콘을 유통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냉장 유통시설이 제대로 없었다. 진 박사는 “부라보콘 40~50개가 들어가는 유리로 된 보온병을 만들어 얼음을 채우고 소금을 뿌려 소매점에 공급했다”고 회고했다. 출시 초기 부라보콘의 인기에 도매상들이 해태공장 앞에 진을 쳐 공장 출입문을 봉쇄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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