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인극 '자기만의 방'서 열연 방은진“여잔 정말 억울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겨울비가 내리던 지난 21일 오후. 담배연기 자욱한 좁은 방. 바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뭔가를 쓰고 있는 방은진의 모습은 다소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피곤한 듯 다소 충혈된 눈. 목소리마저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한달째 모노드라마 '자기만의 방' 에 매달려 있는 방은진은 연극이 얼마나 외로운 작업인가를 새삼 실감하고 있었다.

강연형식의 이 작품을 여배우 방은진만의 스타일로 바꾸려는 작업. 배우이전에 한 여자로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자기만의 방' 속에 담으려는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은 누구나 혼자에요. 혼자 숨쉬고 혼자 죽어가야지요. 그러나 수 많은 여자들은 자신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가족이 소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가족속에서도 현명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자가 필요해요. " 그러나 그녀는 현재의 모습이 자신이 꿈꾸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5살때 이혼한 부모때문에 홀로 친척집을 전전해야해던 그녀는 대학졸업후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회생활 1년만에 다시 연극을 시작했고 결혼과 이혼.배우로서의 바쁜 삶이 그녀의 20대에 이루어졌다.

남편이 아끼는 강아지를 요리하는 이혼녀 (영화 '301 302' ).겁탈당한 끝에 자살하는 외서댁 ( '태백산맥' ).강한 집착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여자 (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 등 팬들의 뇌리속에 각인된 여러 역할들을 두루 해냈다.

그리고 이번엔 그 다양한 삶의 '공통분모' 를 이야기하려고 무대에 섰다.

"배우가 아닌 한 여자로서 관객과 만나고 싶어요. '자기만의 방' 은 이 땅에 사는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겪어야하는 억울함의 뿌리를 밝혀주는 고해성사같은 거예요. " 이 연극은 여성이 창조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 (공간)' 과 경제력을 가져야 한다고 외친다.

방은진은 이 땅의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겪어야 했던 억울함을 그녀 자신과 어머니, 그리고 동료 예술가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과 함께 삭인다.

마성애 (마광수의 '성애론' ).이선택 (이문열의 '선택' ).김창녀 (金娼女) 를 등장시켜 성차별에 시달리는 97년 한국여성들의 성 (性) 과 사랑에 관해서도 일갈한다.

"마녀의 기본적인 이미지는 선보다 악쪽에 가깝지요. 그러나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예지능력을 가진 지혜로운 여자에요. 삶에 주술을 걸 수도 있지요. 중세의 마녀사냥은 남성중심 사회에 반기를 들었던 똑똑한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두려움의 표현이라고 봐요. " 공연장 '마녀' 에 대한 방은진식 풀이다.

92년 이영란이 출연해 여성연극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자기만의 방' 은 25일부터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새로 마련한 극장 '마녀' 에서 공연되고 있다.

글 = 박혜민·사진 = 김진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