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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 프랑스가 반한 ‘똥파리’ 영어 제목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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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6개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거듭하고 있는 화제의 독립영화 ‘똥파리’(양익준 감독·주연·사진). 거친 어감의 ‘똥파리’는 이 영화의 비주류 정서를 잘 대변하는 제목이다. 양 감독은 “어떤 노인이 자기를 똥파리라고 부르는 다른 노인을 살해한 사건을 보고, 제목을 떠올렸다”며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상처입고, 보통 사람들이 기피하는 똥파리같은 아웃사이더들의 아픔을 대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럼,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뭘까. 해외 영화제에 소개된 영어 제목은 ‘숨가쁜’ ‘숨막히는’이란 뜻의 ‘브레스리스(breathless)’다. 영화광이라면 눈치채셨겠지만, 프랑스 ‘누벨바그(새로운 물결)’의 거장 장 뤽 고다르 감독의 그 유명한 ‘네 멋대로 해라’의 원제다(불어로 ‘a bout de souffle’, 영어로 ‘breathless’). 1960년 고다르의 출세작이자 현대영화의 출발을 알린 이 영화는 83년 할리우드에서 리처드 기어 주연의 ‘브레스리스’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브레스리스’란 제목은 ‘똥파리’의 숨막히는 분위기를 강렬하게 압축했다는 평이다. 실제 여러 해외영화제에서 관객들은 양 감독이 지나가면 이름 대신 “브레스리스!”라고 부르거나, 영화에 가장 많이 나오는 욕인 “**놈아~”라고 장난스럽게 외쳤다는 후문이다.

이 영어 제목은 3월 프랑스 도빌아시안영화제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프랑스 관객들이 고다르의 전설적 영화와 같은 제목이라는데 남다른 관심을 보인 것. ‘네 멋대로 해라’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던 프랑스 감독이, 양 감독을 친히 찾아와 반가움을 표하며 밥을 사는 등 호의를 베풀기도 했다. 이번 도빌아시안영화제에서 ‘똥파리’는 대상과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양익준 감독은 ‘브레스리스’가 고다르 영화인 줄 몰랐다고. 단어 뜻도 인터넷을 검색해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영어 제목은 양 감독의 친구가 지어준 것이다.

영화는 대사의 절반 가량이 욕설일 정도로 걸쭉한 욕의 미학도 선보인다. 가장 많이 나오는 욕이 ‘**놈아’다. 처음엔 귀에 거슬리던 욕이, 극이 흘러갈수록, 그리고 주인공 상훈을 맡은 양 감독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맞물려 나중에는 인간적으로 들리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다. 그래서일까. 앞서 얘기처럼 해외 영화제에서도 관객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놈아”라며 감독에게 인사했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양 감독이 “**놈아” 발음할 때마다 폭소를 터뜨리며 호응했다.

지난 3일 국내 시사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양 감독은 “상훈에게 욕지거리와 폭력은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라며 “실제 나는 그렇게 욕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130분간 ‘**놈아’를 들어준 관객께 감사한다”는 이색적인 소감도 밝혔다.

16일 개봉하는 ‘똥파리’는 가정폭력 속에 성장한 용역 깡패가 역시 폭력적 환경 속에 살아가는 소녀(김꽃비)와의 만남을 통해 희망을 찾으려는 이야기. 대물림되는 가정폭력과 애증의 혈연관계를 파고드는 강렬한 화력의 영화로, 초청받는 해외 영화제에서마다 수상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로테르담영화제 대상 등 총 6개 영화제 8개 상을 수상했다. 스페인 라스팔마스국제영화제에서는 남·녀주연상도 수상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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