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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권 속 신사임당 조선風 초상화로 바꿔라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5만원권 지폐 견본의 신사임당 초상화를 두고 말이 많다. 기생, 주모, 늙은 무당처럼 보인다는 의견이 잇따른다. 이것을 그린 이종상 화백은 예술을 몰라서 하는 소리일 뿐 세계 최고 수준의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반박했다. 국민 세금으로 만드는 지폐이기에 모두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신사임당의 얼굴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신문 지상에 공개된 원화(原畵·아래 왼쪽)와 화폐의 초상화를 보면 여러 의문이 생긴다. 더구나 공개 절차를 통해 작가를 선정한 것이 아니라는 문제도 있다. 신사임당의 국가 표준영정은 이당 김은호 화백이 1960년대에 그린 것이다. 한국은행은 이당의 친일 경력과 왜색 화풍 논란 때문에 새 초상화를 제작하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당의 제자인 이종상 화백이 선정되면서 자체 모순에 빠졌다. 이당이 그린 표준영정을 참고했다는 이 화백은 “선생을 초혼(招魂)하며 그렸다”고 말했다. 이당의 표준영정을 배제한다는 취지에 어긋난 현실이 발생한 것이다.

화폐에 실리기 전의 원화는 부자연스러운 해부학적 형태감과 분산된 시점이 눈에 띈다. 가르마와 얹은머리, 귀의 노출 상태, 귀의 크기와 모양새는 정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각도인데 얼굴 방향은 정면에 가깝다. 오른쪽보다 왼쪽 귀가 많이 드러난 형태는 측면이지만 눈썹은 정면 방향이다. 조선시대의 초상화가 대부분 반(半)측면이나 정면인 것은 인물의 분명한 시선을 통해 내면세계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목을 감싸고 있는 옷깃도 부자연스러운데 목 뒤로 넘어가는 갈색 옷깃 부분이 목 선을 따라 넘어가지 않고 마치 살을 파고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원화를 가지고 디자인한 5만원권 속 신사임당의 모습은 원화보다는 훨씬 자연스럽다. 가르마는 정면에 가까워졌고 원화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던 오른쪽 귀도 보인다.

옷깃도 목 뒤로 돌아가게 수정되었다. 화폐 디자인 과정에서 외형을 상당 부분 수정한 것이다. 초승달 모양으로 바뀐 눈썹을 비롯해 원화와는 다른 얼굴이 되었다. 초상화를 보면서 신사임당의 예술가적 기질이나 정신세계를 느끼기 힘들다. 거기에다 기생이나 주모의 상징 비슷한 얹은머리가 두드러져 논란이 잇따르지 않나 생각된다.

초상화와 관련해 영·정조 시대의 두 인물이 떠오른다. 강세황(1713~1791)은 당대 화단의 총수였는데 자화상을 포함한 10점의 초상화가 남아 있다. 그가 자화상을 그릴 때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 임희수에게 부탁했더니 가필 몇 번 만에 진의를 얻어 기뻐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희수는 17세에 요절한 천재 화가였다. 강세황의 초상화 중에서 그가 칠순 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을 때 정조가 화원 이명기에게 그리게 한 초상화가 현재 보물로 지정돼 있다. 이 그림은 이명기가 강세황의 집에 머물며 열흘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이명기는 이때 강세황의 반신상과 아들 강인의 초상화를 포함해 열흘 만에 세 점을 그렸다. 제작 기간이 문제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모든 국민이 즐겁게 사용해야 할 화폐 속 초상화가 논란에 휩싸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은행은 이제라도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면세계가 절로 우러나오는 담담하고 카랑카랑한 조선풍 초상화가 실린 화폐를 보고 싶다.

우승우 동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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