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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같은 오바마·사르코지” 미국·유럽 신밀월시대 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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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뉴스 분석“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마치 연인 사이 같았다.”

프랑스 언론은 지난주 스트라스부르에서 만난 양국 정상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창설 60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두 정상은 미국과 유럽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서로에 대해 깍듯이 예의를 갖추면서도 다정했다.

사르코지는 오바마를 부를 때 친구나 가족들에게 쓰는 프랑스어 표현인 ‘tu’를 사용했다. 정상 간 대화에선 극히 이례적이다.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공식 호칭 ‘vous’가 아니라 ‘tu’를 쓴 것도 처음이다. 새로운 미국·유럽 관계를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게 현지 분석이다.

대서양 관계가 한걸음 가까워진 데는 오바마와 유럽의 리더를 자임하는 사르코지의 개인적 친분이 크게 작용했다. 두 사람은 2006년 워싱턴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내무장관이던 사르코지는 유력한 대선 후보로서 워싱턴을 찾았고,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주미 프랑스 대사에게 부탁해 오바마를 만났다. 그를 만난 뒤 “오바마는 크게 될 사람이 틀림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거꾸로 2년 뒤 미 대선 후보가 된 오바마는 대통령이 돼 있던 사르코지를 찾았다. 선거전이 한창이었지만, 사르코지는 오바마가 이미 대통령이 되기라고 한 듯 공동 기자회견을 하며 그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이 같은 인연은 이번에도 격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바마는 특히 “프랑스가 국제사회에서 보여준 리더십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프랑스가 이번에 나토에 복귀한 데 대한 감사 표시였다. 과거 프랑스는 미국 중심의 질서에 반기를 들기 위해 나토에서 이탈했다. 그러다 이번에 복귀하자, 프랑스 좌우파 양쪽에서 모두 사르코지의 지나친 친미 행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오바마가 프랑스 국민의 자존심을 세워 주는 데 앞장선 것이다. 오바마의 유럽 배려는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은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영국의 외교적 성공”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이 G20을 이끌면서 경제위기 해결의 큰 축을 맡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의견 조율을 잘해 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브라운의 방식’에 오바마가 힘을 실어 줬기 때문이란 평가가 나온다. 과거 미국은 G8 등에서 최종 결정자 역할을 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면서 유럽 각국에 고루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앞서 오바마는 유럽 정상 가운데 브라운을 가장 먼저 백악관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유럽의 한 정치평론가는 “미국이 영국·프랑스·독일과 두루 좋은 관계를 가졌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당분간 밀월 관계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바마의 스타일로 볼 때 한동안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가 될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유럽의 의견을 적극 수용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이라크 전쟁 등을 통해 유럽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미국이지만, 앞으로는 분쟁 지역 해결에서도 일방적인 결정을 내리기보다 오바마·사르코지·브라운 하모니’를 통해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바마는 5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인 체코 방문을 마치고 터키의 수도 앙카라로 향했다. 6일에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 및 압둘라 귈 대통령과 정상회동을 한 뒤 7일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문명과의 대화’ 포럼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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