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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김연아의 점프, 북한의 로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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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김연아의 점프와 북한의 로켓 발사를 보면서 나는 한민족의 공포스러운 돌파력을 생각했다. 한반도는 땅도 좁고 남북 합쳐봐야 1억도 안 되며 근대국가가 들어선 지 겨우 60년이 지났다. 그런 땅에서 세계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기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괴력도 괴력이지만 비극성과 대립성도 기록적이다. 한쪽은 인간의 창의력을 마음껏 풀어놓아 진보·발전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반면 다른 쪽은 정체와 은둔 속에서 자유를 틀어박고 인간의 벼랑 끝 기력을 짜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홍보문구는 ‘다이내믹 코리아’다. 홍보 동영상은 김연아의 피겨와 박태환의 수영을 합쳤는데 대한민국은 ‘큰 심장을 가진 작은 거인’이다. 그러나 연아를 보면 이 표현조차 부족하다. 김연아가 여자 피겨에서 200점을 깬 것은 1968년 미국의 짐 하인스가 남자 100m에서 10초 벽을 깬 것보다 위대한 것이다. 연아는 2004년 134로 시작했다. 5년 만에 무려 50%나 끌어올린 것이다. 세계신기록의 역사에서 이런 식의 점프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프로야구 역사는 30년이 채 안 된다. 미국은 130년, 일본은 60년이 넘는다. 그런 한국이 올림픽에서 우승하고 야구 월드컵에서 준우승했다. 잔디밭도 별로 없는 나라가 세계 여자골프를 점령했다. 한국은 인구로는 20위 안에도 못 들고 경제력으론 13위지만 ‘1등 종목’은 미국·중국·러시아가 별로 부럽지 않다. 36년을 식민지로, 3년을 내전으로 신음했던 나라가 건국 40년 만에 올림픽을 치러냈다.

대한민국은 ‘인류의 기록제조기’다. 1940년대 독일·이탈리아·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3대 추축국(樞軸國)이었다. 일본이 항공모함을 만들 때 한국은 보릿고개마다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청소년의 평균 신장은 일본보다 크고 이탈리아와 같다. 독일보다 조금 작을 뿐이다. 19~20세기 무력으로 정권을 잡아 결과적으로 나라를 구해낸 혁명이 5개 있다는 게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터키의 케말 파샤, 이집트의 나세르, 페루의 벨라스코,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다. 이 중에서 ‘기적’으로 분류되는 경제성장은 한국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만·싱가포르·홍콩도 급격한 성장을 이뤘지만 이들 나라엔 번듯한 중공업이나 세계 일류의 전자산업이 없다. 지금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큰 화물선을 건조하고, 가장 얇은 텔레비전을 만들며, 가장 높은 빌딩을 짓고 있다. 어디 성장뿐인가. 미국 헌법이 탄생한 지 161년이 지나서야 한국은 헌법을 가졌다. 한국의 개안(開眼)은 무려 2세기 가까이나 늦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미국 못지않다.

그러나 한반도엔 음지의 기록도 많다. 지구상에 부패 없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에서부터 대통령 형·조카사위·친구, 수석비서관, 측근, 국회의원, 검사·판사·경찰, 이 모든 사람이 똑같은 한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는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잘살면서 그렇게 많은 고아를 외국에 보내는 나라가 또 어디에 있는가. 북한의 폭압적인 세습 독재는 60년 고개를 넘었다. 100년 기록을 세울지도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핵을 만들고 우주에 로켓을 쏘아 올렸다. 북한은 가장 많은 국민을 동원해 가장 거대한 매스게임을 하는 나라다. 히틀러도, 스탈린도, 마오쩌둥도, 이디 아민도 그렇게는 못했다.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기가 막히게 인류의 기록을 돌파하고 있다. 한민족의 이런 극단적 다이내미즘(dynamism·역동성)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남한만 보면 희망으로 가슴이 뛰면서도 북한을 보면 저 체제가 또 무슨 기록을 만들어낼지 불안하다. 같은 피, 같은 얼굴에서 어떻게 이런 극단이 빚어지고 있다는 말인가. 남한의 경이(驚異)가 북한의 기형(奇形)을 흡수해 한민족의 융합을 이룰 날은 언제일까.  

김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