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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여성 첫 티베트僧 텐진 파모 스님 방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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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티베트 전통 승복인 붉은 가사를 두르고 28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중앙승가대학 접견실에 나타난 텐진 파모(61.본명 다이안 페리) 스님의 눈시울은 촉촉히 젖어 있었다. 이 대학에서 열리고 있는 제8차 세계여성불자대회에 참가한 한 스리랑카 비구니에게서 현지의 딱한 사정을 전해듣고 한참 울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리랑카 비구니는 아직도 제대로 된 수행을 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야 비구니가 생기기 시작했고, 정부와 비구의 반대를 이겨내고 조금씩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고 합니다. 비구니 승단이 정착된 한국 불교와는 비교할 수도 없어요. 사실 지금도 베트남.캄보디아.인도 등의 국가에서는 여성 수행자가 교육받을 공간조차 없습니다."

파모는 서양 여성 최초의 티베트 승려다. 영국 런던의 생선가게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영성.명상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스무살 때 인도로 구도의 길을 떠났다. 서른세살에 인도 북부 히말라야의 외딴 동굴에 들어가 12년동안 은거 수행하며 '성불'한 것으로 유명하다. 비구니를 인정하지 않는 티베트 불교에서 홍일점으로 수행하며 여성도 얼마든지 부처(깨달은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국적과 성의 이중 장벽을 극복한 그의 행적은 지난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에 잘 나타나 있다.

"동굴은 수행하기에 아주 좋은 곳입니다. 고요와 정적 속에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무섭지 않았느냐'고 묻지만 사실 그만큼 안전한 곳도 드뭅니다. 사람도, 식물도, 동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욕심에 물들지 않은 '불성'을 드러내기 때문이죠."

그는 요즘 비구니 승단 복원에 힘을 쏟고 있다. 2000년 인도 북부 다람살라 인근 지역에 여성불자 교육기관을 세웠고, 현재 21명의 수행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깨달음에 남녀의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스님과 일반인의 구분도 무의미합니다. 우리 모두는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부처 앞에 모두 평등한 존재이지 않습니까."

오랜 수행 덕분인지 그의 얼굴은 맑고 잔잔했다. "여성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묻자 "그건 전생의 일이라 모두 잊어버렸다"고 재치있게 답했다. 그러면서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한 건 힘밖에 없으며, 또 여자는 남자와 달리 자신을 과시하려는 교만함이 없다"고 말해 주위의 웃음을 자아냈다.

스님은 29일 중앙승가대에서 '재가자와 출가자의 계율 수행'을 주제로 강연하며, 다음달 13일에는 서울 수서동 비구니회관에서 '깨달음을 향한 여성의 삶과 수행'을 주제로 강연할 계획이다. 다음달 10~11일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에선 '텐진 파모 스님과 함께 하는 명상 수행'행사가 개최된다. 02-766-9580.

글.사진=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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