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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아시아] 아시아 '의료 허브' 각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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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지난해 7월 싱가포르 래플스 병원에서 분리수술을 받은 샴쌍둥이 민사랑.지혜양이 수술 전 부모 및 집도 의료진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아시아의 '의료 허브(중심지)' 자리를 놓고 경쟁이 뜨겁다. 외국인 환자를 불러들이기 위해 정부까지 발벗고 나섰다. 선두는 싱가포르다. 샴쌍둥이(신체의 일부가 붙어 있는) 수술로 얻은 명성을 앞세워 아시아는 물론 중동까지 공략 중이다. 태국은 차별화된 서비스로, 홍콩은 중국 시장을 무기로 싱가포르에 도전장을 던졌다. 인도는 싱가포르의 '허브 전략'에 편승하겠다는 전략이다.

◇민.관이 뭉쳤다='싱가포르 원(One)'은 싱가포르 전체를 하나의 신경망으로 묶겠다는 야심 찬 국가 정보기술(IT) 사업이다. 가장 먼저 하나가 된 것은 IT가 아니라 의료계와 정부였다. 싱가포르 의술을 국제적인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서다.

싱가포르관광청(STB)은 지난달 바레인과 아랍에미리트(UAE)에 의료사절단을 파견했다. 각 분야의 의사 13명으로 구성된 사절단은 일주일간 무료 검진 서비스를 제공하고, 최신 의료기술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 지금까지 싱가포르 의료계의 주요 목표는 중국과 동남아의 부호들이었다. 그러나 이젠 시야를 중동으로 돌렸다. 미국과 유럽의 병원을 찾던 부유층이 타깃이다. 9.11 이후 중동인들이 미국 비자를 받기 어려워진 게 호재로 작용했다.

싱가포르의 경쟁력은 의료 기술뿐만이 아니다. 인종.종교적 다양성도 장점이다. 싱가포르엔 중국인.말레이인.인도인.파키스탄인.유럽인.혼혈 등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다. 종교도 불교.이슬람교.힌두교.기독교 등 다양하다.

최근엔 '관광+진료' 패키지 상품까지 선보였다. 2003년 7월 한국인 샴쌍둥이 민사랑.지혜양 자매의 수술 성공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래플스 병원은 지난 1월부터 래플스 호텔 앤드 리조트와 손잡고 건강검진.암진단.보톡스시술 등과 관광을 결합한 상품을 내놨다. 싱가포르 에어라인의 여행사인 '트레이드윈드 투어스'도 래플스 병원, 파크 어웨이 그룹의 병원과 합동으로 의료.관광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이 같은 공격적 의료 마케팅 뒤엔 정부의 지원이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해 자국의 선진 의료체계와 서비스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홍보조직인 '싱가포르 메디슨'을 출범시켰다. 경제개발국.싱가포르관광청.무역개발국 등 각 부처 간 협력을 통해 2007년까지 50만명, 2012년엔 100만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게 목표다. 이민.검문국(ICA)도 ▶'의료 관광객'에 대한 비자 발급 대기일을 열흘에서 닷새로 줄이고 ▶의료 광고 금지 등 각종 제재조치도 거뒀다.

◇특화와 신속성이 무기=남아시아 최대 민간 병원인 태국 방콕의 붐룽라드에는 매년 30만명의 외국인 환자들이 다녀간다. 역시 전체 환자의 셋 중 하나가 일본.미국.중동인 등 외국인이다. 루벤 토랄 상무는 "태국 병원의 장점은 분야별로 특화된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붐룽라드는 혈압이나 소화기질환이 특기다. 심장병은 방콕 병원, 성전환 수술은 BNH 병원의 프리차 성형기구 또는 푸켓 성형외과 하는 식이다.

태국의 또 다른 장점은 신속성이다. 스미코 쇼월터(41.일본계 미국인)는 건강검진을 위해 붐룽라드 병원을 찾았다. 쇼월터는 "미국에선 검진 결과가 나오는 데 3주나 걸리지만 이곳에선 사흘 만에 결과를 알 수 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서비스도 다양하다. 하루 80~100명의 외국인 환자가 다녀가는 방콕 병원은 22개 국어를 구사하는 30여명의 통역사를 두고 있다. 치료 비용은 싱가포르의 4분의 1, 유럽이나 미국의 5분의 1~10분의 1 수준이다.

그렇다고 태국의 의료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명 병원들은 1970년대부터 높은 의료 수준을 인정받아 왔다. 파이살 찬타라피탁 방콕 병원 부원장은 "오랫동안 명성을 쌓은 뒤인 90년대 들어서야 외국인들이 몰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태국 병원을 찾은 외국인들은 97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264억바트(약 7472억원)를 태국에 남기고 갔다.

◇대국의 이점 살리겠다=둥젠화(董建華) 홍콩 행정수반은 지난해 12월 "홍콩은 중국과 이웃 국가들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기반을 갖췄다"고 선언했다. 홍콩의 강점은 중국 대륙을 배후시장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부터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 등 중국 일부 지역 내 주민들의 홍콩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홍콩 의료계는 부유한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춘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홍콩 최대 의료 그룹인 '퀄러티 헬스케어 아시아'는 휴일 관광과 의료 서비스를 결합한 패키지를 구상 중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과 정보 부족으로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의 온상이라는 이미지도 걸림돌이다.

대국 인도도 만만치 않다. 인도의 전략은 몇몇 나라를 '숙주'로 삼는 '기생(寄生) 의료체계'다. 인도 수출기구(FIEO)는 지난달 의료사절단을 이끌고 싱가포르의 주요 의료센터를 방문했다. 이들과의 연계를 통해 자국의 의료와 관광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아직은 인도를 찾는 외국인 환자들은 한해 수천명 수준이다. 하지만 인도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의료진은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 의과대학 출신의 일류급이다. 영어가 잘 통하고 물가가 싸다는 것도 강점이다.

윤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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