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불량해 보이는 콧수염에 스포츠머리는 영화 속 캐릭터에서 왔다. 양익준 감독은 홍보 기간 동안 이미지의 일관성을 위해 이 모습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안성식 기자]
영화도 무식하게 만들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에게서 수천만원씩 빌렸지만 그도 모자라 전세금까지 담보로 잡혔다. 가슴 속에 쟁여져 있던 ‘이야기’를 후련하니 털고 싶었다. 2006년 여름 20여일간 작파하고 썼던 시나리오를 그렇게 스크린에 옮겼다. 올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타이거상(대상)을 비롯, 해외 5개 영화제에서 7개의 트로피를 안았다. 초청된 영화제가 앞으로도 11개. 순제작비 2억5000만원짜리 독립영화의 놀라운 성과다.
‘똥파리’는 양익준(34) 감독의 말을 빌면 “무식한 열정”이 빚은 첫 장편 영화다. 연출·주연은 물론 섭외와 포스터 제작까지 직접 했다. 소위 ‘떼인 돈 받아드리는’ 청부 깡패 상훈과 여고생 연희(김꽃비 분)의 만남을 통해 거친 악다구니 인생을 까발린다. 여자에 대한 주먹질로 시작하는 첫 장면부터 130분의 러닝타임은 따귀·발길질·욕설 일색이다. 분풀이 대상이 번번이 ‘피붙이’에게로 향하는 것은 지켜보기 괴로울 정도다.
“가정 폭력이 대물림 돼 또다른 폭력을 낳는다. 이 고름을 못 본 척 할 수가 없었다”는 게 감독의 변이다. 해외 반응이 뜨거운 걸 보면서 ‘가족’에 대한 애증은 세계 공통이구나 생각했단다. “자전적 얘기가 아니냐”는 질문엔 스스럼 없이 답했다. “제 얘기에 주변에서 보고 들은 얘기가 합쳐져서 나온 것이에요. 사람들의 속 깊은 가족 얘기를 끄집어 듣는 걸 좋아하거든요. 부모님도 영화 보셨어요. 찔리는 게 있으신지 아무 말 없으시던걸요.”
그는 원래 독립영화계에서 10년째 잔뼈가 굵은 배우 출신이다. 영화 연출은 2005년 시작해 단편 몇 편을 찍었다. 연출이든 연기든 거친 숨결이 느껴지는 건 남들이 대학 갈 때 일자리를 전전했던 20대가 녹아나서다. “상고 졸업하고 외판원·배달부 같은 걸 몇 년 했어요. 군대 갔다 와서 뒤늦게 전문대 연예연기과를 갔죠. 연출 공부를 따로 한 건 없고, 배우하면서 어깨 너머로 배웠어요.”
핸드헬드(handheld)를 사용하고 클로즈업이 잦은 것은 배우 출신 감독 존 카사베츠의 스타일과도 비슷하다. “아무래도 연기자니까, 큰 그림보다 디테일에 관심이 많은 듯해요. 한꺼풀 더 벗기고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 자꾸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게 되네요.”
“나를 위해서 만든 영화가 관객의 갈증도 풀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는 영화 홍보 때문에 불려다니는 요즘이 편치만은 않다고 했다. “휩쓸리지 않고 내 이야기를 계속 하기 위해” 개봉하면 6개월 정도 잠적할 거란다. 영화 개봉은 16일, 개봉일 스크린수는 50개관이다. 독립영화 역대 최대 규모다.
강혜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