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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친 영화 해외서 통하다니 … 가족 간 애증은 세계 공통인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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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다소 불량해 보이는 콧수염에 스포츠머리는 영화 속 캐릭터에서 왔다. 양익준 감독은 홍보 기간 동안 이미지의 일관성을 위해 이 모습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안성식 기자]

이 남자, ‘무식하다’. “배우로서 감정과 스킬(skill) 중 어느 것을 중시하느냐”는 질문에 “스킬이 뭔가요?”라고 되물을 정도다. 요즘 해외영화제에 초청을 많이 받으면서, ‘영어 공부 좀 해야겠다’란 생각을 한다고 했다.

영화도 무식하게 만들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에게서 수천만원씩 빌렸지만 그도 모자라 전세금까지 담보로 잡혔다. 가슴 속에 쟁여져 있던 ‘이야기’를 후련하니 털고 싶었다. 2006년 여름 20여일간 작파하고 썼던 시나리오를 그렇게 스크린에 옮겼다. 올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타이거상(대상)을 비롯, 해외 5개 영화제에서 7개의 트로피를 안았다. 초청된 영화제가 앞으로도 11개. 순제작비 2억5000만원짜리 독립영화의 놀라운 성과다.

‘똥파리’는 양익준(34) 감독의 말을 빌면 “무식한 열정”이 빚은 첫 장편 영화다. 연출·주연은 물론 섭외와 포스터 제작까지 직접 했다. 소위 ‘떼인 돈 받아드리는’ 청부 깡패 상훈과 여고생 연희(김꽃비 분)의 만남을 통해 거친 악다구니 인생을 까발린다. 여자에 대한 주먹질로 시작하는 첫 장면부터 130분의 러닝타임은 따귀·발길질·욕설 일색이다. 분풀이 대상이 번번이 ‘피붙이’에게로 향하는 것은 지켜보기 괴로울 정도다.

“가정 폭력이 대물림 돼 또다른 폭력을 낳는다. 이 고름을 못 본 척 할 수가 없었다”는 게 감독의 변이다. 해외 반응이 뜨거운 걸 보면서 ‘가족’에 대한 애증은 세계 공통이구나 생각했단다. “자전적 얘기가 아니냐”는 질문엔 스스럼 없이 답했다. “제 얘기에 주변에서 보고 들은 얘기가 합쳐져서 나온 것이에요. 사람들의 속 깊은 가족 얘기를 끄집어 듣는 걸 좋아하거든요. 부모님도 영화 보셨어요. 찔리는 게 있으신지 아무 말 없으시던걸요.”

그는 원래 독립영화계에서 10년째 잔뼈가 굵은 배우 출신이다. 영화 연출은 2005년 시작해 단편 몇 편을 찍었다. 연출이든 연기든 거친 숨결이 느껴지는 건 남들이 대학 갈 때 일자리를 전전했던 20대가 녹아나서다. “상고 졸업하고 외판원·배달부 같은 걸 몇 년 했어요. 군대 갔다 와서 뒤늦게 전문대 연예연기과를 갔죠. 연출 공부를 따로 한 건 없고, 배우하면서 어깨 너머로 배웠어요.”

핸드헬드(handheld)를 사용하고 클로즈업이 잦은 것은 배우 출신 감독 존 카사베츠의 스타일과도 비슷하다. “아무래도 연기자니까, 큰 그림보다 디테일에 관심이 많은 듯해요. 한꺼풀 더 벗기고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 자꾸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게 되네요.”

“나를 위해서 만든 영화가 관객의 갈증도 풀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는 영화 홍보 때문에 불려다니는 요즘이 편치만은 않다고 했다. “휩쓸리지 않고 내 이야기를 계속 하기 위해” 개봉하면 6개월 정도 잠적할 거란다. 영화 개봉은 16일, 개봉일 스크린수는 50개관이다. 독립영화 역대 최대 규모다.

강혜란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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